[기자수첩] 어쨌거나 새해
[기자수첩] 어쨌거나 새해
  • 남정호 기자
  • 승인 2023.01.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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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그렇지만 그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말을 지나며 출입처 취재원들과 나눈 새해 인사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대부분 이런 식으로 끝났다. 

지난해 건설업계는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연초에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 이로 인한 물가 상승 여파에 원자잿값이 치솟으면서 자재 수급난을 겪었다.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감소하며 수익성 악화에 골머리를 싸맸다. 매수심리가 쪼그라든 분양시장에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분양 시기를 미루고 미루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에 나서기도 했다. 

하반기에는 레고랜드발 자금난이 찾아왔다. 사업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돈맥 경화(자금 경색)가 발생했고 우석건설과 동원건설산업 등 지방 중견 건설사들이 문을 닫았다. 2020년 500억원 규모 매출을 기록한 동원건설산업은 어음 22억원을 막지 못했다. 여전히 여러 건설사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우발부채로 인한 단기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 

얼어붙은 시장에 힘겨운 건 비단 업계 관계자뿐이 아니다. 주택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국민 역시 고된 한 해를 보냈다. 치솟은 금리에 이자 부담은 눈에 띄게 늘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집을 처분하려 해도 급급매 위주 거래만 이뤄지며 사실상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은 매매거래량이 발목 잡았다.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 사기도 기승을 부렸다.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으로 무자본 갭투자를 벌인 제2, 제3 '빌라왕'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국민 자산 지키기에 빨간불이 켜졌다. 

묵은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왔지만 시장을 짓누르는 여러 악조건은 여전하다. 정부가 1980년 오일쇼크와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이후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면서 전반적인 경기 침체 우려도 크다.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도 마찬가지다. 시장 침체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어느 정도로, 얼마나 침체할 것인가 등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면 하락 폭이 둔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주택 가격 변동은 'V'자형 반등보다는 장기 침체로 가는 'L'자형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정부가 시장 경착륙을 막고 연착륙을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아직 바닥은 멀었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견해다. 

어쨌거나 새해가 왔으니 목표를 세워야 하지 않겠나. 부동산 시장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업계와 국민 모두 시장 경착륙과 장기 침체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겠다. '희망'을 바라기 위해서는 '절망'에 대비해야 하니까 말이다. 

sout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