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장연 시위, 누가 ‘지하철 갈등’의 책임자인가
[기자수첩] 전장연 시위, 누가 ‘지하철 갈등’의 책임자인가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9.2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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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내려서 버스타러 왔는데 여기도 답이 없다.” 아침 출근길, 시위 때문에 발이 묶였다는 지인들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전장연)는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망사건 이후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정부의 침묵에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지하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오이도역 사망사건은 장애인 노부부가 설 연휴를 맞아 이동하면서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에 탑승했다가 철심이 끊어지며 7m 아래로 추락한 비극적인 사고다. 이로 인해 아내 박모씨는 사망했으며 남편 고모씨는 중상을 입었다.

오이도역 사건 이후에도 리프트가 이용 도중 멈추는 등의 사고는 종종 발생했다. 승강기 보다 이용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안전까지 확보되지 않아 이용자들은 리프트를 공포 대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계단 한쪽에 설치된 리프트는 혼잡한 시간대에는 이용이 어려워 대기를 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장애인들은 안전한 이동의 자유를 외치고 있다. 전장연은 시위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자 하는 시위가 아니다”라며 “20년간 계속된 외면에 지하철로 나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전장연의 목적은 정당하다. 이들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다.

다만 시위의 수단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장애인 예산과 무관한 많은 시민들은 출근길 불편을 겪었고 다수는 지각을 했다. 누군가는 시험시간에 늦었고 또 다른 이는 할머니 임종을 보러 가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버스를 타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다수의 시민들은 “불편을 겪어보니 도저히 시위를 옹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이 묶여 목적지에 제때 도착하기 힘들 때의 초조하고 답답한 심정. 누군가는 하루였지만 장애인들은 수십년 동안 이같은 불편을 겪었을 터다.

그럼에도 ‘출근길 자유’를 가로막은 전장연의 시위를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갔다고 해서 나 역시 타인의 물건을 훔치는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시위는 마지막으로 선택한 간절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장애인 관련 예산이 줄어들고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은 지하철역에 승강기가 없는 불편을 모르는 막막한 현실에. 하지만 똑같은 불편을 통해 비장애인들과의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지금은 장기간 이어진 시위의 방법을 다시 고민해야 할 때다.

이동의 자유를 원하는 휠체어의 바퀴 만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서는 부모님들의, 직장을 얻기 위해 면접장으로 향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발도 절실하다. 절실함의 무게를 판단할 수 없기에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막아서서는 안된다.

지하철 승강기는 장애인들에게만 필요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다리를 다치거나 무릎이 아픈 고연령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람은 언제든 다칠 수 있고 언젠가는 늙는다. 모두를 위해 지하철, 버스 등 이동수단은 승강기 설치를 비롯한 교통약자를 위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지하철 시위가 멈추더라도 비장애인 역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더 이상 갈등의 방관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출근과 이동권을 두고 벌이는 ‘지하철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에 있다.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의 일쯤은 나몰라해도 된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당장 예산을 늘리고 이동권 보장을 약속하기 힘들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단계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을 맞아 공개한 인사 영상에서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울 때 더 고통받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넉넉하게 보듬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어려운 분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진정한 약자 복지가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기관, 이웃이 힘을 합쳐 사회안전망에서 어느 누구도 소외되는 분들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민들의 출근권과 사회적 약자들의 이동권조차 완전하게 보장되지 않는 지금, 정부는 왜 상황을 관망하는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넉넉하게 보듬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