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포스트 코로나, 먹거리 안전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
[기고] 포스트 코로나, 먹거리 안전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
  • 신아일보
  • 승인 2022.09.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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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시민모임 하상도 부회장(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
 

코로나로 온 인류가 고통 받는 사이 오히려 K(코리아)-푸드는 전성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간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레토르트식품, 통조림, 라면 등 장기 보존식품이 비축식량으로 활용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재택근무, 집회금지 등으로 집에서 먹는 가정간편식(HMR) 시장도 급팽창했다. 게다가 온택트 시대가 되면서 전 세계가 더욱 가까워지며 수출도 급성장 중이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에 살면서 돌도끼와 돌칼을 만들고 사냥과 수렵으로 음식을 구해 먹었다. 신석기인들의 움집에는 화덕 터와 저장 굴이 남아 있어 불을 활용해 음식을 조리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청동기를 가진 북방 유목민이 고조선을 세워 농기구를 만들어 농경을 발달시켰다. 철기시대에도 철제 농기구로 농업이 더욱 발달했다. 삼국시대에는 소를 활용해 땅을 갈았으며 물을 이용해 농산물 생산량이 급증했다. 고려시대에는 주식으로 쌀을 먹었지만 산간지역에는 밭이 많아 참깨, 보리, 밀, 멥쌀이 경작돼 잡곡밥이 더 일반적이었다. 국수, 떡, 약과, 다식 등을 즐겼으며 간장, 된장, 술, 김치 등 발효식품도 즐겼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모내기가 보급돼 보리와 벼를 이모작했고 원예작물의 재배에도 힘썼다. 임진왜란 전후로 남방에서 고추, 감자, 고구마, 호박, 옥수수, 땅콩 등이 들어왔으며 개고기와 육회, 생선회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시대는 전국에서 진상한 다양하고 귀한 재료와 궁중 주방 상궁들의 솜씨 덕분에 한국 음식의 절정기를 이뤘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전후부터 술, 떡, 엿 등 가내수공업을 시작으로 근대적인 공업화의 싹을 틔우기 시작해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식량 원조와 전쟁 군수품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 근대화와 1980년대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인스턴트식품이 소개되고 피자, 햄버거 등 외국음식의 도입으로 글로벌한 식생활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이런 음식의 역사 덕분에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도 풍요로운 한식인 K-푸드를 즐기게 된 것 같다.

코로나 이후 먹거리 패러다임도 크게 변했다. 가공식품의 선호가 늘면서 식품의 판매 기한을 의미하는 유통기한을 넘어 수명을 의미하는 소비기한제 도입도 확정됐다. 장기보관을 위한 냉동·냉장식품이 급성장했고 새로운 유형의 식품, 새로운 제조공법, 신식품 대체원료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공유주방 등 규제 샌드박스가 활성화되고 온택트 소비 증가로 인한 온라인 배달, 새벽배송, 자판기, SNS 구매, 해외 직구 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식품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것이 ‘가정요리’다.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 재택근무 등으로 가정에서의 요리가 증가하면서 식품시장이 변화되고 있다. 또 양념, 향신료, 밀키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장이 크고 있다. 코로나 이후 많은 업종들이 성장과 침몰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 속에 미래 식품산업은 편의성, 안전성, 기능성을 지향할 것이며 외식과 간편식, 기능성식품, 다양한 포장재의 수요가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아웃도어 식품의 개발과 노약자, 환자를 위한 특수용도식품이 활기를 띨 것이다.

지금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부하고 안전한 먹거리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가장 불안한 시기라고 느낀다. 소시모는 높은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미래 생활안전·식품안전 이슈를 지속 발굴·해결하면서 소비자들의 안심을 책임질 것을 약속한다.

/ 하상도 (사)소비자시민모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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