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프면 쉬는 문화 제대로 정착할까
[기자수첩] 아프면 쉬는 문화 제대로 정착할까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7.0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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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아프면 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기치 아래 추진되는 사업으로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일을 하기 힘든 경우 일일 4만3960원을 지급한다.

시범사업은 서울 종로, 경기 부천, 충남 천안, 전남 순천, 경북 포항, 경남 창원 등 6개 시군구에서 3가지 모델로 진행된다. 모델에 따라 대기 기간은 3일~14일이며 보장 기간은 90~120일이 적용된다. 보장 수준은 최저임금의 60% 수준으로 동일하다.

아파도 일을 해야 소위 ‘근성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한국 직장 분위기가 상병수당 도입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다만 관건은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는 지다.

우선 상병수당은 보장 수준이 낮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직전 소득의 60%를 상병수당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정부는 최저임금의 60% 수준으로 수당을 책정했다. 때문에 쉬는 기간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보장 수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최대 14일로 시범 적용되는 대기기간도 제고가 필요하다. 대기기간은 휴무 시작일부터 상병수당 지급 개시일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득에 공백이 생겨 제도 이용이 어렵다. 특히 유급병가를 사용할 수 없는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등이 소득 공백기간을 버티지 못해 상병수당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질병 정도에 따른 보장 조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장기간 쉬게 될 경우 소득 감소가 큰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단기간 회복이 가능한 상병 지원보다는 장기간 발생하는 건강 손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실효적인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상병수당이 보편적인 안전망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급 병가를 법제화해야 한다. 시범모형은 병가·휴직 등 아플 때 쉬는 것을 보장하지 않고 있어 병가·휴가 이용이 어려운 근로자는 제도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업체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무급 병가를 법제화해 취약 일자리 근로자도 병가 이용과 상병수당 수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시범사업은 1년간 진행된다. 시범기간 미흡한 점을 보완해 2025년 상병수당을 전국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제도가 시행되면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이용 증가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시범사업 기간 제도 악용에 대한 대비책과 적정한 보장 수준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