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녹슬고 벗겨진 우리 철도 역사
[데스크 칼럼] 녹슬고 벗겨진 우리 철도 역사
  • 천동환 건설부동산부장
  • 승인 2022.06.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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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았다. 쨍하니 화창했다. 파랗고 높고 넓은 하늘 군데군데 흰 구름이 선명했다. 출근길에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다는 예보를 본 듯한데 이곳 의왕의 오전은 맑았다.

지난 17일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을 찾았다. 예전에 열차를 타고 의왕역 인근을 지나면서 창밖으로 몇 번 스쳐 본 기억이 있는데 방문은 처음이다. 6월28일 128주년 철도의날을 앞두고 우리나라 철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철도박물관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임시 휴관을 마치고 약 2개월 전 재개장했다. 신아일보 취재진을 맞는 배은선 철도박물관장은 활력이 넘쳤다. 배 관장은 오전 10시 기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부터 점심시간 빼고 약 3시간가량 쉴 틈 없이 말하고 또 말했다. 취재를 마무리할 때쯤 돼서야 그의 열변 뒤에 숨은 고충과 속내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철도박물관은 기대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2만3700여㎡ 크기 야외전시장에는 지난 철도 역사를 채운 여러 가지 차량이 있다. 대통령 수송을 전담했던 차량부터 영화에서나 보던 시꺼멓고 커다란 증기기관차까지 역사적 의미를 떠나 조금은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복고풍 감성을 풍기는 차량들이 눈길을 끌었다. 군 복무 시절 철도 노선에서 사라져 많이 아쉬웠던 '통일호'를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반가웠다.

그런데 차량들을 하나씩 살피다 보니 자꾸 무언가 눈에 거슬린다. 페인트가 일어나고 녹슬고, 거미가 집을 지은 흔적이 여기저기 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려 일부러 보수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배 관장에게 물었다.

배 관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니다. 예산 문제다"라고 답했다.

'대통령 전용 디젤전기동차' 본동 2량은 지난 4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이를 포함해 '파시형 증기기관차 23호'와 '협궤 증기기관차 13호' 등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차량 10개가 국가등록문화재다. 문제는 이들 차량 중 상당수가 여름에는 비를 맞고 겨울에는 눈을 맞는다는 거다. 차량을 보호할 지붕조차 제대로 없어 온몸으로 거친 자연의 손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전시 유물 관리 상태뿐만 아니라 관람객을 위한 시설 상황도 다른 박물관과 비교해 조금은 초라하다. 철도박물관 전체가 겉으로 풍기는 느낌을 함축하면 '낡음'이다. 안타까웠다.

철도박물관은 한국 철도의 역사만큼이나 굴곡진 시간을 보내왔다. 1935년 서울 용산에 처음 문을 연 박물관은 한국전쟁으로 폐관됐고 지금의 의왕 박물관은 1988년에 문을 열었다. 1997년에 연 서울역관도 있었는데 2004년에 폐관돼 의왕 박물관으로 통합됐다. 철도박물관 운영은 한때 민간에 위탁하기도 했는데 현재는 한국철도공사(이하 한국철도)가 맡고 있다. 

한국철도는 자체 예산으로 박물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승객 감소로 적자난에 허덕이는 한국철도가 혼자 힘으로 철도박물관을 꾸려가기는 버거워 보인다. 유지 관리가 어려우니 관람객 유치가 쉽지 않고 관람객 유치가 어려우니 유지 관리가 쉽지 않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계기가 필요하다.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의미를 듣는 시간은 내내 흥미롭고 즐거웠다. 나름 철도에 대해 적잖이 안다고 생각한 기자도 철도가 이렇게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 확실히 철도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철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됐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철도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박물관이 처한 현실에 더 마음이 쓰였다. 

기사 하나를 계획하고 시작한 취재였는데 함께 간 기자는 4편 연재 기사를 쏟아냈다. 그만큼 박물관에는 독자들과 공유할 거리가 많았다.

이날 철도박물관에서 만난 유치원 어린이들의 반짝이던 눈과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박물관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꿈을 꿨을까? 

철도박물관은 우리 철도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통로면서 철도와 국민을 연결하는 매개다. 국민이 철도를 바로 볼 수 있게 돕고 미래 철도 꿈나무들에게 충분한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차원 관심과 지원이 지금 바로 필요한 이유다. 선거철이면 빼놓지 않고 철도를 소환하는 정치권도 철도 역사 보관소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꼭 한 번 들여다보길 바란다. 

철도박물관 관람객들의 기억 속에 우리 철도의 모습이 '낡음'으로 남아서야 되겠는가.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