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전금법, 왜 서두르나
[데스크 칼럼] 전금법, 왜 서두르나
  • 나원재 경제부장
  • 승인 2022.06.07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산업군에선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후보자 시절 국민권익을 표방해 내세운 공약을 가장 빨리 이행하는데 있어 주요 산업의 이슈를 묶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 금융업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용자의 편익 제고를 이유로 ‘종합지급결제사업(종지사)’을 중심으로 한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이 화두로 떠올랐다.

종지사는 카드사나 빅테크 등이 결제·이체 계좌를 갖고 이용자에 부여하면서 이를 이용한 결제·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골자다. 사실상 예금과 대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은행 업무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런 까닭에 빅테크와 일부 핀테크 기업, 카드사를 중심으로 시장 진출을 위한 군불 때기가 한창이지만 은행권은 동일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검사·제재 권한이 금융위로 쏠릴 것을 우려했고 공정위는 일부 개정안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과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규제 완화를 내세우면서 종지사 도입을 손질하고 있지만 결과론적으론 상당한 마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예상치 못한 금융 산업의 혼란이다.

정부는 고맙게도 금융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지하고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해 비금융사의 금융업 진입 장벽을 낮춰 이용자 편의를 제고한다지만 졸속처리 논란이 예상된다.

종지사의 최소 자본금은 200억원 이상이라 빅테크 외 일부 자본을 갖춘 핀테크 기업이 결제·송금 시장에 뛰어들어도 부담은 상당할 수 있다. 자본경쟁 시장에선 결국 빅테크만 살아남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은 아니지만 글로벌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글로벌 업체의 국내시장 진출길을 열어주는 환경이 조성되면 현재 은행권과 빅테크·핀테크 간 경쟁구도는 셈이 복잡해진다. 이 또한 자본경쟁 구도가 재편돼 결국 국내기업이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이들 업체 간 무리한 이용자 유치경쟁에서 크고 작은 보안사고가 발생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전가된다. 정부가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해도 금융사고에 대한 보상은 제한적일 수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이동통신 이용자의 통신료 부담을 경감한다는 명목으로 ‘보편요금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체감요금은 크게 줄지 않고 이통사의 매출만 급감해 재투자 속도를 늦추는 결과를 만들었다.

또 글로벌 OTT(인터넷동영상서비스) 기업의 국내시장 장악을 우려해 IPTV(인터넷TV)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권역제한 폐지와 동등결합 허용 등 권한을 확대한 결과 SO(케이블TV)의 지역성은 축소되고 말았다.

이용자의 편익 제고를 내세웠지만 결국 관련 산업의 재편과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해진 셈이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간과해선 안 되겠다. 좋은 취지라고 해도 산업을 재편하기까진 관련업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결과를 두고 나올 수 있는 뒷말도 최소화해야 한다.

전금법과 종지사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