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방자치를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최근 6·1 지방선거를 지켜보며 들었던 의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화두에 지역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윤심’이냐 ‘명심’이냐의 대결구도 뿐이다. 후보자들도 ‘안정론’과 ‘견제론’을 기준으로 갈라질 뿐이다.
몇 달째 대선이 끝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대선-총선-지선으로 연결되는 위계적인 정치 구도는 견고하다.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선으로 종속시키는 이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소용이 없다. 줄을 잘 서야 공천을 얻을 수 있기에 실력과 신념보다 집단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맹목적 충성에는 중앙을 정점으로 끝없는 줄 세우기만 있을 뿐이다. 이 줄은 종속과 예속으로 향한다. 지방은 결코 중심이 될 수 없으며 자치와 분권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로 성장은 한계에 달했고, 코로나로 인해 삶의 가치와 방식도 크게 변화했다. 대외적으로는 30년간 구축했던 세계화가 막을 내리고 있으며 식량과 에너지, 공급망 위기 등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바야흐로 정답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진입했다.
지금의 정치 구조로 이러한 문제에 대응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불확실성과 갈등이 가득한 시대를 훌륭한 지도자 한둘이 모두를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코로나가 보여줬듯 지역과 세계가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초연결 시대에 정부가 모든 것을 손에 쥐고 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다. 덩치가 큰 20세기 정부 시스템으로는 복잡하고 예측이 불가한 21세기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각자도생의 길로 만드는 시장에 맡길 수도 없다. 정부와 시장의 사잇길을 뚫어내야 한다. 이 사잇길이 바로 자치와 분권이다.
자치분권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합리적으로 배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주민의 직접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출산·고령사회에 직면하면서 지방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방인구의 감소에도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은 전체인구의 49.5%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지만, 중앙정부 중심의 공공서비스는 전국에 획일적인 기준과 지침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 지역 여건에 맞는 맞춤형 치안·복지 서비스 제공이 어렵고, 주민의 다양하고 차별화된 요구를 충족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청년실업과 수도권 집중 문제, 성장동력 창출 등 국가·사회적 현안을 지방과 수도권이 힘을 모아 해결하기 위한 발전전략이 자치분권이다.
정답이 사라진 시기일수록 모두가 운명 공동체의 성원으로 책임과 권한을 나눠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건설해가야 한다. 이 길만이 지속가능한 삶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이 하라는 대로 하는 방식에는 책임과 윤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갈등을 해결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창안하려면 모두가 주인으로 참여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자치와 분권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6·1지방선거가 자치와 분권을 향하는 길목이기를 바란다. 당부하건대 지방선거를 대선의 연장전으로 곡해하는 선동가와 아첨꾼을 조심하자. 내가 이기는 게 대통령이 이기거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호소하는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자.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모든 환상과 싸우고, 중앙권력을 확대재생산을 하는 도구로 지방을 소모하는 방식에 저항하자.
6·1은 우리가 더 좋은 정치 시스템으로 나갈 것인가를 묻는 매우 중요한 선택의 날이다. 대통령의 나라가 아닌 주권자의 나라로, 서울이 아닌 모든 지역이 중심인 시대로 대한민국을 바꿔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