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삼성’하면 보통 신한금융그룹을 떠올리지만, 한때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을 연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삼성증권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우리금융그룹을 이끌던 그는 나중에 KB금융그룹 회장으로 이동하는 등 시대를 호령했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풍운아 황영기’가 산업은행의 새 수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본인은 여러 경로로 완곡한 거절의 뜻을 나타냈지만 거론되는 거물 중에도 그만한 적임자가 드물다는 평은 여전하다. 황 전 회장은 외국계 은행 경험으로 투자은행(IB) 업무에 정통하고, 증권사 조직에도 능숙하다. 전통적인 은행업이나 거대 조직인 은행 중심 금융그룹을 아우르는 것에 최적화된 인사인지에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다만 선이 굵고 조직 활력을 제고하는 데엔 가장 특화돼 있다는 호평 역시 만만찮다.
그는 우리금융 회장으로 일하던 시절 제약을 일상다반사처럼 생각하던 예금보험공사와 적잖이 마찰을 빚으면서 성과를 올렸다. 그 시절 회현동(우리금융 본사 및 우리은행 본점) 주변에선 그가 개발했다던 건배사인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가 끊이지 않았다는 후문이 나온다.
KB금융 회장에 부임한 뒤에도 일부 노조 구성원들은 그를 백안시했지만 조직 역동성 부여 업적은 분명했다는 것. 정통 뱅커인 강정원 KB국민은행장과의 마찰 속에 새삼 금융당국이 우리금융 시절 행보를 문제 삼아 징계 추진을 하면서 2009년 그는 백기를 들게 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13년 그는 금융위원회 징계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받아내면서 ‘명예회복’의 최소한을 이뤄낸다. 이에 따라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 화려하게 부임하는 등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한때 그는 “검투사 정신으로 싸우자”는 발언이나 “어딜 가든 주인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발언들로 유명세를 치렀다. 아직 삼성 출신 파란 피 내지 증권 분위기를 은행에 심고자 노력한 인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지만, 이런 발언들 때문에 늘 승부사, 야전사령관 이미지로 회자됐다.
그러나 실속은 별로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나, 필생의 라이벌 전광우씨에게 초대 금융위원장 각축전에서 밀렸고, 산업은행 회장 하마평도 한때 올랐었지만 그땐 이 가문의 영광을 민유성씨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런 그이기에 이번에 새삼 산업은행 회장에 다시 거론되는 게 달갑잖을 수 있다. 하지만 세간에선 우리금융이 이번에 드디어 민영화에 성공한 바탕 중 상당 부분을 삼성 스타일을 우리금융에 심었던 황영기 전 회장 덕으로 보기도 한다.
그는 역할을 다시 한 번 주문받고 있다. 때마침 산업은행을 인베트스먼트 중심으로 축소, 재편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조 반발쯤은 이런 문제에 이골이 난 그로선 두렵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쌍용차나 KDB생명 등 고질병을 덜어내는 데 새 접근을 그가 요할지가 문제다. 기존 산업은행 같은 어중간한 관료주의 체제와 권한 대신 백지위임장을 받고 싶을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를 내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