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윤해서 작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시공간, 소설 '움푹한'
[신간] 윤해서 작가가 만들어낸 특별한 시공간, 소설 '움푹한'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2.04.1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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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시간의 흐름)
(사진=시간의 흐름)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독창적인 세계관과 시적인 문체로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윤해서의 새 장편소설 ‘움푹한’이 출간됐다.

13일 출판사 시간의흐름에 따르면 소설 ‘움푹한’은 한 존재의 소멸이 상대방의 기억 속에 생성하는 움푹한 시공간의 단면을 살핀 작품이다.

우리 삶에서 소중했던 공통의 존재가 떨어져나갈 때, 당신의 가슴에 생긴 상처의 단면은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날카로운가, 조약돌처럼 매끄러운가.

대상이 무엇이든 애정하는 어떤 존재를 상실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감으로 감각되는 그에 관한 기억을 ‘윤해서적인’ 소설의 순간들을 통과하면서 문학적으로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속 네사람 운, 현우, 이영, 마태오의 시간은 분절돼 있고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네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그러나 독자는 읽어나가는 동안 점점 알아차리게 된다. 빈 공간, 누군가의 부재를.

한 사람이 사라졌다. 여름내 울던 매미가 갑자기 뚝, 울음을 그치듯이. 사람은 그렇게 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떠날 때가 되면 떠난다.”

사라진 사람이 있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사라진 사람은,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기억과 시간 속에 목소리로, 모습으로, 어떤 말로, 어떤 한 순간으로 계속 존재한다. 남겨진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라진 사람을 기억한다.

한 사람은 모든 말을 들여다보는 사람. 계속해서 같은 것을 들여다보는 사람. 그의 눈은 언제나 그곳에 머문다.

한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되기 위해 매일 쓰는 사람. 남겨지기 전에도, 남겨진 후에도 매일 쓴다. 아침마다 다른 마음으로 일기를 쓰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한 사람은 느리게 숨을 쉬는 사람. 무감하고 욕망도 없는 사람. 그래서 매일 달리는 사람. 동생이 사라지기 전에도, 사라진 후에도 매일 달린다.

그리고, 자꾸만 기다리는 사람. 다음 해 봄에 다시 올라올 수선화를 기다리듯이. 죽은 듯이 사라졌다가도 봄만 되면 꽃을 피워 올릴 수선화를 기다리듯이. 수선화의 구근이 땅속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을 것을 상상한다.

한편 윤해서 작가는 소설집 ‘코러스크로노스’를 발표하고 소설 ‘0인칭의 자리’, ‘암송’, ‘그’를 썼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