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일이다. 국내 굴지의 시스템통합(SI) 업체는 당시 경쟁업체로 DHL을 꼽아 관련업계를 놀래켰다. SI 업체가 글로벌 물류 업체를 경쟁사로 꼽은 일은 꽤나 파장이 컸다. 아무래도 SI 업체와 글로벌 물류 업체의 경쟁구도를 그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DHL은 더 이상 물류업체가 아닌 솔루션 업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실제 DHL은 물류업체지만 자체 솔루션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자동화하고 있었다. SI 업체로선 DHL를 경쟁 솔루션 업체로 인식한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을 규정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뉴욕타임스에는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한 가정집 가장은 유명 대형마트가 딸 앞으로 보낸 출산용품 할인 쿠폰을 보고 분노해 마트를 찾아가 따졌지만 결국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딸이 고등학생 미성년자라 출산용품과 무관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딸은 실제 임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해당 마트는 그의 딸이 평소 출산용품에 관심이 많다는 정보를 AI를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은 그렇게 기업 간 경계를 허물었고 초연결·초융합 사회를 명목으로 우리 산업과 생활경제에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었다.
금융사도 4차 산업혁명의 사정권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됐다. 금융사도 일련의 사례를 남의 집 얘기로 치부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간 은행과 증권·보험·카드 등 비(非)은행은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해 왔지만 제도적인 한계에 부딪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020년 8월 시행한 데이터3법(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은 올해 초 전면 시행한 마이데이터 사업과 맞물려 본격적인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다. 마이데이터는 개인정보를 스스로 적극 관리·통제하면서 신용이나 자산관리 서비스에 보다 안전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가령, 금융 이용자는 각종 기관과 기업 등에 분산돼 있는 본인 정보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고, 업체에 이를 제공해 맞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학생의 경우, 졸업증명서와 장학금 이력 등을 이용해 학자금과 창업자금을 대출하고 직장인은 보험납입과 4대 보험 정보 등을 활용해 일자리 컨설팅과 대출, 주거지원, 이외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금융사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신혼부부의 주거환경을 추천하면서 생애 주기별 맞춤 서비스를 추천을 할 수 있고, 생애 주기별 다양한 맞춤 서비스를 빅데이터를 분석해 제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금융권 수장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주요 금융사 수장들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래 디지털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새로운 금융서비스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졌다.
금융사 수장이 어깨 위 짐을 덜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덧입힌 조직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빨리 인식해야 한다. 관련 조직을 재정비하고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하며 스스로 AI와 빅데이터로 미래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전폭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금융사가 개인정보 보호를 담보한다면, 규제는 줄이고 진흥정책은 확대해야 한다.
시장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신사업을 깜짝 발표하는 금융사 수장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