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의 부동산과 닮은 '윤의 집무실'
[데스크 칼럼] 문의 부동산과 닮은 '윤의 집무실'
  • 천동환 건설부동산부장
  • 승인 2022.03.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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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길이라고 확신하더라도 과속은 금물이다. 길을 잘 못 선택했다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가자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 중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 시도는 한 발 떨어져서 봤을 때 너무 조급하다. 당사자들은 충분히 검토했다지만 모든 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을 때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이 어떤 문제에 부닥쳐 헤매고 있을 때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해법을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선택권은 주인공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에 관객이 어쩔 도리는 없다. 관객은 주인공이 제대로 선택할 때 쾌감을 느끼고 엉뚱한 선택을 하면 탄식을 내뱉을 뿐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프로젝트'를 윤석열 당선인이 출연한 정치 영화라고 생각해보자. 정치 영화에서는 '무엇을 선택하느냐'보다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한 초점이 되곤 한다. '잘못된 선택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전쟁 영화나 공포 영화와는 다르다.

정치 영화의 관객은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정답을 알기 어렵고 당장 생사를 가를 정도로 급박한 선택이 아닌 때가 많기 때문이다. 관객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것은 주인공이 답을 고르는 과정과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모습, 역경을 이겨내고 결정적인 순간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야 영화가 흥행한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정치권의 뜨거운 논쟁거리지만 대다수 국민 시각에서는 집무실이 청와대에 남든 용산으로 가든 세종으로 가든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방안마다 장단점이 있고 어떤 방안을 선택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도 한 방향으로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안점은 '집무실을 옮기려는 윤석열 당선인의 명분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가', '명분을 통해 표현되는 윤 당선인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인가', '그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가'. 이런 것들이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빼내오는 것 자체에 윤 당선인을 지지하고 열광할 국민은 많지 않을 거다. 그 과정에서 어떤 스토리를 완성해 국민과 공유하느냐가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게 무엇인가. '부동산'이다. 부동산 정책 자체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민심 측면에서 정말 잘못된 것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의 스토리다. 국민과 충분한 공감대가 이뤄지기 전에 정책 방향성이 너무 단단하게 굳어졌고 처음에는 자신감, 나중에는 조급함이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국민에게 의심받는 정책적 명분을 지키려는 과정은 집요했고 이 과정에서 다주택자 같은 이들은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윤 당선인의 집무실은 문 정부의 부동산과 닮았다. 나름대로 명분은 있지만 그 명분에 대한 자기 신뢰가 너무 확고해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는 느낌이다.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국민은 '굳이 저럴 필요 있나?'라며 물음표를 단다. 집무실 이전 논란을 두고 언론에서는 '신·구 권력 다툼'으로 표현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윤 당선인에게 더 급하고 중요한 것은 문 정부와 힘겨루기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국민과 소통해 공감대를 얻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집무실을 옮기려는 이유가 뭔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고 국민과 더욱 가까이서 소통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집무실을 옮기는 과정 자체가 그래야 한다. 국민 곁으로 간다는 개념을 물리적으로 해석했다면 크나큰 오판이다. 과정을 그르치면 용산 집무실 둘레에는 청와대보다 훨씬 높은 마음의 벽이 쌓일지도 모른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