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리인상 속도전, 부작용 경계해야
[데스크칼럼] 금리인상 속도전, 부작용 경계해야
  • 이영민 경제부장
  • 승인 2022.01.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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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년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를 기록했다고 한다. 매체들이 앞 다퉈 40년래 최대 상승폭이라며, 기록적인 CPI 상승에 따른 미 연방준비제도의 긴축 흐름에 명분이 쌓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새해 들어 연이어 쏟아지는 FOMC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의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물가가 오른다는 건 실물가치에 대한 교환 수단인 명목화폐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최근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흐름에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나 팬데믹에 따른 노동시장의 공급문제, 공급망 병목 현상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 침체를 우려해 각국이 급격한 팽창 위주의 통화정책을 사용했다는데 있다.

16세기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였던 장 보댕은 화폐수량설에 입각해 물가 등락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는 “양팔 저울의 한쪽은 돈을 다른 쪽은 상품을 올리고 수평을 맞춘 후, 돈이 있는 저울에 돈을 더 올리면 다른 쪽 접시가 올라간다”고 말했다. 수세기 후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1930년 ‘이자론’을 발표하며, 화폐수량설을 정리한 교환방정식을 내놓는다.

화폐수량설은 화폐 공급량의 증감이 물가수준의 등락을 정비례적으로 변화시킴을 의미한다.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물가는 오른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2021년 11월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작년 11월 시중통화는 광의통화(M2, 현금 유동성 지표) 기준 40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 12월 13.1% 이후 13년 만에 최대 증가폭이다. 이처럼 시중에 통화량이 급증했다면 물가는 필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유동성 확대에 따라 작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5%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치인 2%를 넘어선 것이다. 한은도 국내 물가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14일 금리를 0.25% 추가 인상했다. 팬데믹 이전의 기준금리 1.25%로 되돌린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전반적인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인플레이션이 무서운 까닭은 그 정도가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눈덩이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개인이 평생 동안 소득활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을 40년으로 봤을 때, 매년 2%씩 물가가 오른다면 내가 가진 현금의 가치는 어떻게 변할까. 그리고 4%씩 오른다면. 명목화폐의 가치는 각각 2분의 1과 4분의 1로 떨어진다. 한은의 관리목표인 2%를 넘지 않더라도 점진적으로 꾸준하게 물가가 상승한다면 내 돈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각국 중앙은행이 사활을 걸고 물가관리에 올 인하는 이유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 부의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중시킨다.

독일의 경제학자인 하노 벡은 최근 그의 저서 ‘인플레이션’에서 “인플레이션은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과세”라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 화폐가치는 하락하고, 실물자산의 가치만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국 승자독식의 마태 효과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다.

이날 이주열 총재는 앞으로 상당기간 3%대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된다며 기준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한은이 작년 8월과 11월 그리고, 1월까지 불과 반년 새 세 차례나 기준금리 인상을 강행하는 속도전에 나서는 것은 우려스럽다. 시장에서도 벌써부터 급격한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소비위축, 가계부채 부실화,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사반세기’의 아픈 역사가 급격한 금리인상에서 촉발됐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일본 금융당국은 부동산 버블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1년 새 다섯 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2배 이상으로 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급증하자 이자 부담에 부동산 투매 현상이 나타났고, 주택가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디폴트를 선언하는 가계가 늘어났고 은행의 건전성은 추락했으며, 주식시장은 붕괴했다. 결국 소비 위축이 심화하며 디플레이션 장기화에 따른 지독한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 들었다.

한은은 인플레이션 공포를 잡겠다고 단기간에 급격한 금리인상 조치를 취할 경우, 이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신아일보] 이영민 경제부장

yeongmin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