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연임이 23일 새벽(현지시간 22일) 결정되면서, 한국 금융정책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첫 임기 중 보인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한국은 더 큰 변동성을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때마침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같은 날 오전 소상공인 지원대책 등 12억7000억원대 재정정책 카드를 새로 꺼내들어 갑론을박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연준의 내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속도와 금리 인상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연준은 11월4일 성명에서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단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파월 의장 연임이 조건 만기를 당길 가능성 확대로 해석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임 지명을 받고 "노동시장을 지원하고 추가 물가 상승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수단은 결국 금리 인상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는게 관련 전문가들 중론이다. 결국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경우에 따라 앞당겨 시행되거나 횟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주무르는 글로벌 경제질서 상황이 더욱 녹록치 않게 전개되는 점도 맞물린다. 중국이 내수 촉진을 위해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하고, 미국은 해외에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어링 정책'과 내부적 지출을 통해 경제와 복지를 모두 챙기는 일명 '사회적 인프라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정무섭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중국의 내수 진작에는 위안화 절상이 유리하고, 사회적 인프라 예산 추진에도 강달러인 것이 더 나은 조건"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화 가치 약세가 불가피하다. 파월 의장 연임 소식이 전해진 후, 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달러화 강세가 나타난 이유다. 1200원선 돌파마저도 아예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므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달러 강세 영향으로 일단 1190원대로 상승한 뒤, 코로나19의 유럽 재확산과 연준 통화정책 변수에 따라 추후 등락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도 고환율 상황으로 흘러갈 위험이 큰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제가 보기에는 수도꼭지를 잠그는 테이퍼링, 그리고 기준금리 인상을 미국 연준이 (파월 연임으로) 당초 예상보다 더 빨리 할 가능성이 있다. 리먼 브러더스 이후 유동성 회수 국면에서 우리 시장에서 환율이 크게 오른 바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직후 우리 시장에서 갑작스럽게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서 환율이 1600원선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이렇게 환율이 이전 대비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게 되면 외국자금 이탈 우려와 함께 이를 대응하기 외한 정책적 압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높아진 물가 수준과 가계부채 부담 등을 감안해 이번에 기준금리를 0.25%p 올릴 것이라는 점은 기정사실화돼 있다. 여기에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오는 25일 한 차례 기준금리 인상에 이어 내년 초 추가 인상을 전망했다.
현재 미국의 파월 의장 연임 이슈 외에도 여러 선진국이 모두 금리 인상을 앞당기는 방안을 저울질 중이라는 분석이 대두된다. 따라서 크게는 선제적 금리 인상부터 작게는 환율 시장의 스무딩 오퍼레이션(급격한 환율 변동에 중앙은행이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것)까지, 선진국들의 신호를 면밀히 검토하다 필요시 즉각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과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장기적 호흡에서의 추가 대책 마련도 중요하다는 주문이 그래서 대두된다. 외환보유고 증액 논의는 물론 정부가 빨리 한미 통화 스와프를 연장하는 등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이런 맥락이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서로 충돌하면서 효과를 상쇄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책 효과의 누수를 막는 것은 물론 시장의 불안을 덜어주는 측면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저소득층 대출자의 부담이 발생할 것이므로 이들에 대해 이자 부담 완화 등 적절한 맞춤형 정책을 해주어야 한다"면서도 전반적인 재정정책 강화로 엇박자를 내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조자룡 헌 창 쓰듯 재정정책을 쓰던 여유는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시기가 왔다. 파월 의장 연임이 만드는 나비효과가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돌풍으로 증폭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골든타임이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