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삼성화재 '복수노조' 논란…이재용 사과도 '무색'
[이슈분석] 삼성화재 '복수노조' 논란…이재용 사과도 '무색'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1.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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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 뒤 사원협의회도 노조 전환
평협노조 "대표교섭노조 지위 유효"
한국노총 "삼성그룹 노사전략 부활"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삼성화재가 복수 노조로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노총 산하 노동조합이 결성된 지 얼마 안 돼 사원협의회가 노조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원협의회는 사규를 근거로 운영되는 사내 공식 조직인 만큼 사원협의회의 노조 전환을 보는 안팎의 시선이 곱지 않다. 여기에 삼성화재는 다수 인원이 가입했다는 이유로 사원협의회 노조와만 임금 교섭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작년 5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무노조 경영'에 대한 고개를 숙인 지 불과 1년 5개월 만에 舊(구)삼성의 노사전략이 삼성화재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한국노총 산하 노조 출범 뒤 회사 공조직 사원협의회도 노조로 전환

27일 삼성화재노동조합(이하 삼성화재노조)에 따르면 삼성화재노조는 지난해 2월 삼성화재 설립 68년 만에 출범했다. 삼성화재노조 안에는 내근(정규직) 지부 600여명과 보험설계사 지부 3400명이 조합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삼성화재노조는 노조 출범과 함께 임금 및 단체 협상을 사측에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약 두 달 뒤인 4월에는 평사원협의회노조(이하 평협노조)가 설립됐다. 평협노조는 직원이 입사하면 자동으로 가입됐던 기존 평사원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한 조직이다. 평협노조에 가입된 직원은 삼성화재 전체 임직원 5620명 중 57%인 약 3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화재노조는 우선 설립 및 교섭 우선 요구를 이유로 대표노조는 삼성화재노조라고 사측에 통지했다.

하지만 평협노조가 더 많은 조합원 수를 근거로 교섭단체는 평협노조가 돼야 한다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평협노조에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부여했고 삼성화재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삼성화재 사측과 평협노조는 지난 6월부터 임금 및 단체협상 절차를 진행했다. 이에 반발한 삼성화재노조는 지난 7월 평협노조 설립과정의 문제가 있었다며, 노조 설립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요청했고, 다음 달인 8월 법원으로부터 사측과 평협노조의 임단협 중지 가처분 판결을 받았다.

◇ 삼성화재노조, 평협노조 교섭 중지 가처분 신청…법원 받아들여

삼성화재노조는 평협노조 설립신고서가 제출된 지난 3월22일 기준 조합 가입자 수 135명과 총회 개최 당일 3월26일 조합원 수 1290명에 대한 차이와 개정 변경을 위한 임시총회 결의에 14명만이 참석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와 함께 평협노조가 노동자의 자주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 사측의 지원으로 출범했다고 삼성화재노조는 보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지난 2012년 공개된 △평사원협의회와 같은 노사협의회를 노조 설립 시 대항마로 활용하고 △유사시 친사노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육성·활용한다는 내용의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삼성그룹 비노조 경영 'S그룹 노사전략' 내용을 제시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삼성화재는 물론 삼성이란 이름이 붙은 기업에서는 '노조'는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던 상황에서, 짧은 시간에 사원협의회가 노조로 전환한 '천지개벽'과 같은 상황이 회사 측과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 역시 "평협노조가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들고, 서울지방노동청의 노동조합 설립 신고 수리 및 평협노조 설립은 무효로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며 삼성화재노조의 교섭 중시 가처분 신청에 손을 들어줬다. 노조 설립 자체에 문제가 있어 노조 지위가 박탈된다면, 사측과 맺은 임단협 역시 무효가 될 수 있는 만큼, 노조 설립 정당성을 살핀 뒤 임단협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평협노조는 이번 법원 결정은 삼성화재와의 교섭 중지만 해당할 뿐 대표교섭노조 지위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교섭 중지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달 말까지 삼성화재노조와 평협노조에 각각 추가 서류를 받은 뒤 내달 초 교섭 재개 및 중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사측 "어떠한 노조와도 교섭 못 해"…한노총 "비노조 전략 부활"

삼성화재노조는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중앙노동위원회를 통해 사측이 삼성화재노조와 교섭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달 1일 노동위에서 결정이 나올 예정인데, 노동위가 삼성화재노조 요구를 받아들이면 노조는 임금인상률과 연말 성과금 기준 등에 대해 사측과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다만, 실제 삼성화재 사측이 삼성화재노조와 임단협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이미 사측은 과반수 직원 참여를 이유로 평협노조를 교섭 대상으로 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화재는 임직원 전용 포털 공지를 통해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따라, 회사는 삼성화재 평협노조와 진행했던 2021년 임금협상 관련 잠정 합의안을 적용할 수 없게 됐으며, 현재로서는 어떤 노동조합과도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삼성화재 관계자 역시 현재 상황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직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회사 차원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한국노총은 이재용 부회장이 폐기했던 '비노조 경영 전략이 부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삼성화재는 삼성화재노조가 평협노조의 단체교섭을 중지하라는 가처분 신청에 따라 어떠한 노조와도 협상할 수 없다는 사상 유례없는 공지를 올렸지만, 공지와는 반대로 평협노조의 가처분 이의 신청에는 가처분 국내 최고권위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사실상 평협노조가 대표교섭노조 지위를 유지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결국, 삼성그룹의 노사전략이 부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