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이 뿌리내린 토양 튼튼하려면
[기자수첩] 기업이 뿌리내린 토양 튼튼하려면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1.09.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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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가 오히려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거나 ‘비리의 온상’이 되는 부작용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먼저, 청년 노동자들의 생계 안정과 중소·중견기업의 우수한 인재 유입 등을 목적으로 마련된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악용한 갑질이 비일비재하다.

직장갑질119가 올해 5∼9월 내일채움공제와 관련된 갑질 제보 사례를 수집·분석해 제작한 '내일채움공제 갑질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내일채움공제 사업이 근로감독 미비로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일채움공제는 일정 기간 공제에 가입한 노동자에게 만기 시 불입 금액의 3∼4배 이상을 지급하는 제도다.

단순히 제도의 목적만 놓고 보면 중소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유익한 제도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이 ‘내일채움공제’ 기간 동안 근로자들이 퇴사하지 않는 특성을 악용해 부당한 업무를 지시하거나 월급을 삭감하고 성희롱 발언까지 일삼는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자 A씨는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이 너무 후회된다”며 “개인적인 업무 지시가 빈번했지만 내일채움공제를 생각해서 버텼다”고 호소했다.

또 일부 회사에서는 계약서에 실제 연봉보다 높은 액수를 기재하고 월급 중 일부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용장려금’ 부정수급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부정수급액은 2019년 8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93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126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기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고용노동부에 휴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은 이후 휴업 대상 노동자에게 일을 시켰다. 또 다른 기업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을 지급하고는 일부를 현금으로 되돌려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기업도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으로의 인재 유입과 장기 근속을 위해 도입한 ‘내일채움공제’가 도리어 청년들의 족쇄가 되는 일이 늘어난다면 결국 인재들은 떠나고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고용장려금 부정수급액 급증은 고용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감시와 개선이 절실하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저하시키는 부정행위는 결국 기업이 뿌리내려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토양을 척박하게 만든다. 때문에 사업장에 대한 지속적인 근로감독으로 악용사례를 근절하고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 노동자와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