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TPP 가입 경쟁에 美 한발 빼고 日 대리전 나서
양안 TPP 가입 경쟁에 美 한발 빼고 日 대리전 나서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1.09.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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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부 투자 우선 명분, '대만 지지, 중국 견제' 속내

중국과 대만이 앞다퉈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 가입 의사를 밝힌 가운데, 미국은 현재로선 복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내면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CNN과 CNBC 등은 25일(이하 모두 현지시간)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등을 인용해 이 같은 미국 외교·경제 정책 방향을 보도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TPP 창설을 주도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이탈한 바 있다. 양안(즉 중국과 대만)이 서로 이 경제 질서에 가입 의사를 드러낸 가운데, 미국도 정부가 바뀐 만큼 다시 가입할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TPP와 관련해 "지금 다시 들어갈 의향이 없다"고 일단 거리를 둔 셈이다.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2016년 미국이 TPP에 서명했을 때보다 세계 상황이 크게 변했다면서 "세계에서 통용하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에 투자를 최우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협정이 현상대로 (유지된다)라고 하면 참가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고도 전해 미국 내 기류가 당분간 바뀌지 않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의미심장한 것은 최근 중국과 대만이 TPP에 가입 신청한 데 대해 미국 국무부가 일정한 속내를 드러냄으로써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이다. 

외신에 따르면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회원국의 의향을 존중한다"면서도 중국과 대만 가입 이슈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드러냈다.

그는 "중국이 비시장적인 무역관행과 타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 가입을 받아들이는 판단요소가 될 것"이라고 견제하는 한편, 대만에 관해선 "세계무역기구(WTO)의 책임 있는 회원국이고 민주주의 가치관을 신봉하는 점이 평가 판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중국이 TPP에 가입 신청을 내면서 역내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TPP에 서둘러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 국무부의 이번 발언은 이 같은 일반적인 전망을 일축하더라도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수뇌부에서 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한편, 이미 일본이 미국의 이익을 대신해 중국과 사실상 대리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미국 국무부가 이 같은 형세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일본은 24일 "대만의 TPP 가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선언함으로써, 미국이 직접 나설 부담을 줄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이후 한국과의 정상회담 일정에 덧붙여, 한국전 당시 공로자 훈장 수여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한 바 있다.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을 서훈하는 자리에 우리 국가원수를 초빙한 점은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 주기를 요구하는 신호로 분석되고 있다. (사진=청와대)
조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이후 한국과의 정상회담 일정에 덧붙여, 한국전 당시 공로자 훈장 수여식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한 바 있다.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을 서훈하는 자리에 우리 국가원수를 초빙한 점은 미중 갈등 구도에서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해 주기를 요구하는 신호로 분석되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야스토시 니시무라 일본 경제상은 "대만을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적 가치에서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한다"고 이날 강조 발언을 함으로써, TPP 문제를 사실상 경제적 지역 공동체 문제가 아닌 정치와 국가 시스템 문제로 확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TPP 가입에는 기존 회원국들의 의사가 대단히 중요한데, 이 상황에서 일본이 이처럼 미국의 곤란한 점을 대신해 대리전으로 볼 수 있는 태도를 비친 것은 시사점이 크다. 이 같은 경제와 외교안보의 혼합 국면에서 미국이 한국에 내밀 청구서의 크기가 상당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주목된다.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