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 날 남양의 눈물
[기자수첩] 그 날 남양의 눈물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09.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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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연휴 전인 지난 5월4일은 비가 내렸던 탓에 날씨가 꽤 궂었던 날로 기억한다. 그 날은 남양유업 본사가 있는 서울 논현동으로 출근했다.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로 여론이 무척 악화된 때였다. 전날 홍원식 회장의 중대 입장 발표가 있을 거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남양유업 사옥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다. 출근하는 임직원들의 얼굴 표정도 대부분 굳어 있었다. 

당시 여론은 오너인 홍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남양이 침체에 빠지게 된 직접적 원인이 된 ‘대리점 갑질’ 파문부터 외손녀의 일탈, 경쟁사 비방 댓글 등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 악재들이 겹겹이 쌓인 가운데, 불가리스 사태가 결정타로 작용하면서 누군가는 확실히 책임을 져야한단 목소리가 갈수록 커진 상황이었다.   

그 날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홍 회장은 직접 나와 허리를 숙이며 국민들에게 사과를 구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단 뜻을 밝혔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모든 잘못은 나에게 비롯됐고, 남양 대리점주들과 임직원에게 실망과 심려를 끼쳐 정말 미안하다”며 “살을 깎는 혁신으로 새로운 남양을 만들 직원들을 다시 한 번 믿어 달라”며 읍소했다. 

홍 회장의 눈물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 경영면에선 아쉬움이 큰 것과 별개로 인간적으론 그가 안쓰럽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친이자 창업주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에 이어 1990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이후 30여 년간 남양유업을 이끌었다. 회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홍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 전까지 주변 지인들에게 실추된 회사 이미지를 반드시 회복시킨 다음 명예롭게 물러나겠단 얘기를 종종 했다고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의지가 컸다. 비록 불가리스 사태로 사퇴하게 되면서 그의 뜻은 꺾였지만 적어도 그 날 홍 회장이 흘렸던 눈물은 남은 임직원을 위해 남양에 다시금 기회를 달라는 진심으로 보고 싶었다. 

4개월여가 지난 지금 남양유업은 그 날로부터 아직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홍 회장은 사퇴 이후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에 경영권 지분 53.08%를 넘기는 주식매매계약을 맺었지만 지분 매각 일정을 연기하고, 결국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한앤코는 계약은 유효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 사이 남양유업 대표 등 일부 임직원은 불가리스 사태에 따른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홍 회장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로 폄하하고 싶진 않다. 한앤코와의 계약을 해제할 만큼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추락한 회사 이미지로 속앓이 하면서도 새로운 남양에 기대를 걸었던 전국의 수많은 대리점들과 임직원들의 눈물도 생각했어야 했다. 60여년에 가까운 남양의 역사와 자부심은 이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