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투고] 111년 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그 날 경술국치
[독자 투고] 111년 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그 날 경술국치
  • 신아일보
  • 승인 2021.08.2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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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보훈청 보훈과 선양홍보팀장 이순희
111년 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그 날‘경술국치,
111년 전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그 날‘경술국치,

8월 29일은 111년 전 일제에 강제로 주권을 빼앗긴 치욕스러운 날인 경술국치일(庚戌國恥日)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의 뼛속에 깊이 새긴 가장 비참하고 가장 절통한, 민족이 오래 되새겨야 할 날”이라고 명명하였다.

광복절은 많은 국민이 알고 있지만, 경술국치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우리가 경술국치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날의 슬픔과 치욕스러움을 떠올리는 것보다 앞으로 제2의 경술국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전쟁을 벌였다. 1년여의 전쟁 끝에 승리를 거둔 일본은 본격적으로 한국을 침탈하기 시작했다.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체결했는데 강제로 체결된 이 조약에는 한국의 외교권 박탈과 우리 땅에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우리 민족은 다양한 방면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먼저, 전국적으로 의병이 들고일어나 국권 회복을 위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한편, 국민교육과 산업 진흥 등으로 실력을 쌓아 국권을 되찾고자 하는 여러 애국계몽운동 단체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 선생으로 구성된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해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밝히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일제의 방해로 헤이그 특사 파견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반발한 군인들은 의병을 조직해 13도 창의군을 편성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계획하는 등 무장독립투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09년 일제는 기유각서를 통해 우리의 사법권을 박탈하고, 이듬해 6월 경찰권까지 박탈하였다.

1910년 8월 22일, 일제는 불법 한일병합에 관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했고 1910년 8월 29일, 관보에 게시되면서 우리나라는 국권을 잃게 되었다. 이 사건을 ‘경술년에 겪은 나라의 치욕’이라는 의미로 ‘경술국치’라 부르게 된 것이다.

경술국치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이권 다툼으로 국제사회가 급변해 가고 있지만,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외세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잘못들이 더해진 결과였다.

한편, ‘경술국치일'은 지난 5년에 걸쳐 전국 17개 광역시의회 및 시도지자체 의회에서 조례 제‧개정을 완료하여 국치일 당일 전국의 모든 지자체 및 산하기관에서 일제히 조기를 게양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8월 15일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은 날이었다면, 8월 29일은 조국이 빼앗기게 된 날이다.

조국을 빼앗기고 되찾은 날이 함께 있는 8월에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잃은 국치일에 꼭 조기를 게양하여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부산보훈청 보훈과 선양홍보팀장 이순희

[신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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