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쿄올림픽 도시락이 쓰레기통에”…일본 ‘간에이 대기근’ 잊었나
[기자수첩] “도쿄올림픽 도시락이 쓰레기통에”…일본 ‘간에이 대기근’ 잊었나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1.07.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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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3일 그 서막을 열었다.

쿠베르탱이 주창한 올림픽정신(올림피즘)에 따르면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서 심신을 향상시키고, 문화와 국적 등 다양한 차이를 극복, 우정과 연대감 및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며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중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의 실현에 공헌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더 나은 세계’라…일본이 올림픽 경기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준비한 도시락 수천인분을 매일같이 무더기로 폐기하고 있다는 일본 방송사 TBS의 보도가 알려지자 전 세계인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더욱이 포장조차 뜯지 않은 도시락들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누리꾼들은 ‘올림픽 정신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도시락을 정성스레 만드신 분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음식을 대하는 조직위의 태도에 매서운 질타를 멈추지 않았다.

급기야 조직위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시락이 폐기된 것이 맞다”며 인정했고, 마사 타카야 올림픽 조직위 대변인도 “도시락 폐기가 있었다. 적절한 수량이 발주돼 납품이 이뤄져야 할 부분으로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도쿄올림픽은 개막 직전 올림픽 사상 최초로 ‘무관중 개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그러면서 당초 7만명 규모였던 자원봉사자들의 업무는 3만여명 이상이 자원봉사 업무에서 배제됐고 미리 맞춰놨던 자원봉사자들의 도시락은 매일 수천 개씩 경기장에 배달된 후 채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다.

자원봉사 인원이 줄어 도시락을 먹어 줄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인원에 맞게 식수를 조정하거나 도시락이 필요한 곳에 기탁할 수는 없었나, 조직위의 선택에 많은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세계 평화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열린다는 올림픽 행사에서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폐기하다니 말이다.

일본이 지금처럼 번영의 시대를 맞기 전 일본은 에도 시대 4번의 대기근을 겪었다. 특히 ‘간에이 대기근’(1640년부터 1643년)은 일본 역사상 가장 비극적 대기근으로 꼽힌다. 이후 ‘교호 대기근’(1732년), ‘텐메이 대기근’(1782~17878), ‘덴포 대기근’(1833~1839) 등이 이어지며 수백만 명이 아사로 목숨을 잃었다.

물론 비슷한 시기 조선에도 ‘경신 대기근’과 ‘을병 대기근’ 등이 덮치는 지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또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모든 것을 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했다. ‘아끼고, 절약하며, 검소한’ 일본인이라는 인식이 머리에 박힐 정도로 가까이에서 본 일본 사회는 낭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런 일본이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하고서 먹지도 않은 새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니…올림픽 현장에서 그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세계인은 경악했다.

일본인의 핵심 중심사상으로 꼽히는 ‘절약정신’은 2021년인 현재,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보통의 가정식에서조차 버려지는 음식 없이 소식하는 일본인들이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니…도통 믿어지지 않는다.

허리띠 졸라매고 ‘근검과 절약정신’ 하나로 세계 최강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그만 지난날을 잊어버린 걸까.

내 머릿속의 (겸손하며 절약하고 낭비가 없는) 일본인의 모습이 극심한 혼란을 겪은 오늘, 신채호 선생의 말씀이 과거를 잊은 일본사회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