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화 도둑질, 빌미 제공 경계해야”
[기자수첩] “문화 도둑질, 빌미 제공 경계해야”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1.06.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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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한국 가정에서 숙제처럼 행해지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다음해의 1년 밥상을 책임질 김장을 담그는 일이다.

비록 요즘은 ‘직접 담근다’는 의미가 퇴색되고 구매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대충 먹더라도 김치만큼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김치는 너무나 당연한 고유의 음식이요, 김장은 오랜 전통을 가진 문화다.

그런데 발효식품인 김치가 면역력을 증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문화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김치를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동북공정은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로, 고구려‧발해 등 중국 국경 안에서 일어난 일을 자신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일컫는다. 이들은 역사 왜곡에 더해 문화까지 영역을 확장하면서 한복, 김치, 갓 등도 자신들의 고유문화라 우기고 있다.

특히, 김치는 중국식 채소절임인 ‘파오차이’에서 유래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피클’에 가까운 파오차이는 김치와 달리 유산균이 없고 제조방법, 모양 등이 전혀 다름에도 말이다.

중국은 이에 대한 근거로 파오차이가 2020년 'ISO 24220 김치 규범과 시험방법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은 사실을 제시했다.

하지만 ISO 문서는 인가 식품을 'Pao cai'로 명시하면서 해당 식품규격이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김치는 이미 2001년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산하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서 국제 표준으로 정해진 바 있다. 결국 ‘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 표준’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주장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국내 포털 업체 A사에서 진행한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김치를 중국의 파오차이로 오역해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해당 방송에서는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출연해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웠고, 이 과정에서 중국어 자막을 파오차이로 표기했다.

이에 대해 A사 측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훈령을 참고해 번역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문체부의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표기 지침' 훈령(제427호)은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를 '파오차이'로 규정하고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김치 원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영상은 ‘한국도 김치가 파오차이에서 유래됐다고 인정했다’고 우기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김치는 고유명사 그대로 표기하거나, 신치(辛奇)로 바꿔야 한다.

소중한 문화라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기보다 제대로 지키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