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양의 진심, 다시금 기대해본다
[기자수첩] 남양의 진심, 다시금 기대해본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06.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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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 단 45일 만에 주인이 바뀌게 됐다. 남양유업의 얘기다. 수년간 1조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유업계를 선도했던 남양이다. 하지만 오너가(家)의 잇따른 패착으로 소비자 신뢰는 추락했고, 기업 이미지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불가리스 사태’가 트리거가 되면서 반세기 이상 이어졌던 홍씨 일가의 오너 경영은 막을 내리게 됐다. 

남양유업은 1964년 창업주인 고(故) 홍두영 명예회장이 설립했다. 2세인 홍원식 전 회장은 1990년 남양유업 사장 자리에 오르면서 경영에 본격 나섰다. 2003년부턴 남양유업 회장을 맡았다. 우유 ‘맛있는우유 GT’와 ‘아인슈타인’, 분유 ‘아이엠마더’, 발효유 ‘불가리스’ 등 다양한 스테디셀러를 앞세워 2012년 매출 1조3650억원을 올리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이듬해 대리점들에게 물량을 억지로 떠넘긴 이른바 ‘대리점 갑질’은 사회 전반에 파장을 일으키며 추락의 시발점이 됐다. 2019년 외조카 ‘황하나 파문’과 지난해 ‘경쟁사 비방 댓글’ 등 홍 전 회장을 둘러싼 악재들이 연이어 터졌다. 남양을 불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커졌지만 오너가는 귀를 막은 것처럼 보였다.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지난 4월13일 불가리스의 코로나19 항바이러스 연구결과 발표 이후 여론은 다시금 악화됐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남양이 또 남양했네”라는 조소와 함께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었다. 

사태 3주째인 5월4일 홍원식 전 회장은 은둔 경영을 깨고 공식 석상에 나와 대국민사과와 함께 사퇴했다. 대리점 갑질에도, 외조카 마약 파문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그였다. 그만큼 불가리스 사태가 큰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자식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겠단 얘기에선 크게 울먹였다. 아마도 선친에게 물려받은 경영권이 자식에게 잇지 못하고 자신에서 끝났단 점이 무척 서글펐을지도 모른다. 

불가리스 사태 45일 만인 지난달 27일 홍 전 회장은 자신을 포함한 경영권 지분 53.08%를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에 넘기면서 남양의 오너 경영은 마침표를 찍었다. 불가리스 심포지엄과 홍 전 회장의 퇴진 현장을 직접 지켜봤던 입장에선 꽤 씁쓸했다. 

남양은 안팎으로 줄곧 ‘진심’을 강조해 왔다.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진심을 주제로 한 소비자와 대리점주, 직원의 인터뷰 영상이 여럿 게시됐다. 하지만 불가리스 사태는 불신만 남기며 남양의 진심을 믿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상처를 줬다. 여론을 가볍게 여긴 대가는 컸다. 

경영권을 쥐게 된 한앤컴퍼니는 ‘새로운 남양’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자신했다. 새로운 남양은 부디 상처와 비난 대신 격려와 칭찬의 기업으로 바뀌길 기대해본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