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인터뷰] 의료계 "정보 보호 대책 있으면 반대 안 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인터뷰] 의료계 "정보 보호 대책 있으면 반대 안 해"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1.05.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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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관계 벗어난 의료기관 대상 '책임 전가·불신 양산' 우려
민간사업에 공공 목적 심평원 활용 대신 '별도 시스템' 필요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 해소·의료 정보 유출 방지' 방안 요구
(왼쪽부터)지규열 의사협회 보험이사와 서인석 병원협회 보험이사,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 (사진=각자 제공)
(왼쪽부터)지규열 의사협회 보험이사와 서인석 병원협회 보험이사,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 (사진=각자 제공)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내가 가입한 보험사에서 자동으로 실손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금 청구를 위해 번거롭게 서류를 준비할 필요가 없고, 청구 행위 자체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토록 편리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의료계는 왜 반대할까?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들어보고, 의료계가 생각하는 대안도 살펴봤다.<편집자 주>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요 인사들은 의료 정보에 대한 관리 문제를 공통으로 지적했다. 확실한 정보 보호 대책이 있다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했다. 근본적으로 보험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의료기관에 정보 제공 부담을 키우는 법 자체를 반대하지만, 의료 정보가 유출되거나 부적절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을 방안이 있다면 한층 진전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 중계 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공공 목적 기관을 민간사업에 이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핀테크 기업 등을 통해 별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Q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입법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규열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의료기관에 책임 전가 말아야"

실손보험은 보험계약자와 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에 사적으로 가입·계약하는 민간보험이다. 보험업법상 보험계약에 따른 법률관계는 보험계약자와 보험자, 보험금을 취득할 사람(수익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의료기관은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계약상 법률관계와 무관한 상태다.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보험금 수령을 위한 각종 증명 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에 대해 법적 의무를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를 전송하게 되면, 정보 주체인 환자가 인지하지 못 한 상태에서 중요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이에 대한 책임을 두고 의료기관과 중계기관, 보험회사 간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과 같은 행정인력과 인프라가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에는 동일하게 구축돼 있지 않다.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위해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고, 행정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환자 동의 없는 서류 전달, 의료기관 불신 우려"

현재 핀테크 업체를 통해 구축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시스템은 환자 본인이 정보 제공에 동의한 후, 서류를 직접 보내게 돼 있다. 환자가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주체라는 인식이 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청구에 대한 주체를 환자 본인이 아닌 의료기관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로 인해 환자는 보험금 지급이 거절됐을 때, 그 문제가 의료기관에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지금도 의료 현장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종종 발생하는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된다면 더 자주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환자 중에는 소액이라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보험금을 청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원하지 않는 진료 정보까지 보험사에 넘어가면, 이 과정에서 정보 유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환자 개개인의 진료 정보가 집적돼 보험료가 인상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 "보험사 이윤 창출에 활용될 가능성 커"

보험사들은 소비자들의 편익 증대를 위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영 보험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하면, 보험사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환자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상품을 개발하거나 건강관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성일종·전재수·윤창현 의원이 공동으로 10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를 열었다. (사진=신아일보 DB)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성일종·전재수·윤창현 의원이 공동으로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의료업계와 보험업계는 신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두고 엇갈린 입장으로 맞섰다. (사진=강은영 기자)

Q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중계기관 역할을 반대하는 이유는?

지규열 이사 "심평원에 과도한 권력 집중 가능성 커"

심평원은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진료비 심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법인이다. 민간보험사가 운영하는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 심평원이 개입하는 것은 기본적인 설립 목적에 벗어나고, 건강보험법 위반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국에는 심사업무를 하는 곳이 심평원 하나밖에 없다. 심평원은 공보험에 대한 의료 정보를 다루고 있는데, 사적보험에 대한 자료까지 담당하게 되면 모든 의료자료가 집적된다. 심평원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심평원과 의료기관 간 정보 비대칭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서인석 이사 "민간기업을 위한 공공기관의 시스템 운영 부당"

보험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이다. 보험금 청구를 위한 시스템 구축을 위해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공기관인 심평원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공공보험의 업무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평원이 40년 넘게 구축한 시스템을 민간보험사의 행정업무를 위해 운영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Q 청구 간소화를 추진할 수 있는 대안은 없나?

지규열 이사 "보험업계 스스로 시스템 구축 나서야"

실손보험 청구에 대한 부분은 보험사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현재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설치된 인프라를 중소형 병원까지 확대하기 위해 보험업계가 먼저 나서서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있다. 중계기관인 심평원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보험업계가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선다면, 의료업계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서인석 이사 "핀테크 업체 제휴 통한 시스템 확대"

현재 핀테크 업체들이 대형병원을 시작으로 중소병원과 약국까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핀테크 업체를 거쳐 실손보험 청구가 이뤄진다면, 민감한 정보도 암호화를 통해 전송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

김준현 대표 "정보 보호 방법 논의해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핀테크 업체를 활용하거나, 보험사들이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정보를 어떻게 보호하고, 정보 활용에 대한 부분을 확인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에게 편의성을 위한 방법이라고 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한다.

eykang@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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