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쿠데타의 상처를 아는 민주국가의 역할
[기자수첩] 쿠데타의 상처를 아는 민주국가의 역할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5.1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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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회담을 앞두고 청와대가 분주하다. 한국과 미국의 동맹 공고화라는, 가상화폐처럼 실체도 없는 일종의 무형 자산이 국민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오는 정치적 행사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방역이란 명목의 정부 통제와 부동산 시장 불안정이 야기한 좌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민과 청년에게 한미 정상회담은 그들만의 축제라는 것이다.

청와대 일부 관계자 전언을 종합하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 적어도 한국 측이 관심을 갖고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사안은 △대북정책 개진 △백신 확보 △친환경 자원 개발 △반도체 △이외 한-미-일 관계 등 대외 현안 조율 정도로 볼 수 있다. 세계적 현안 또한 논의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설명이지만, 정작 미국이 크게 관심 가질 미얀마 군부 정변에 대해선 사실상 전혀 언급이 없다.

지난 16일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 신문에는 '지난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 후 한국에 대한 현지 국민이 인식이 좋아졌다'라는 내용의 기고가 실렸다. 미얀마 주재 일본인이 현지인을 대상으로 '쿠데타 이후 인상이 좋아진 나라'를 조사했는데, 89%가 한국을 꼽았다.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와 '미얀마 국민 편에 섰다' 의견이 대다수다.

미얀마 정보통에 따르면 현지에선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번 사태를 같은 사건으로 공감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이유로 '우리와 같은 일을 겪었다' 입장이 있었는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유사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역설적인 건 국내에서 미얀마 쿠데타 상황을 부각하고 나선 건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쿠데타 다음날부터 국회에선 규탄 성명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여당 비례대표 전용기 의원이 오전 9시 9분에 발표했고, 약 25분 후 국민의힘 중진 하태경 의원 측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후부터 국민의힘은 모든 대응 면에서 민주당보다 빨랐다. 당 차원에선 2월 5일 당시 대변인을 맡았던 김은혜 의원이 수치 여사 감금과 관련한 논평을 냈고, 민주당은 이보다 나흘이나 지나서야 최지은 국제대변인이 쿠데타 규탄 논평을 냈다.

나아가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미얀마 인권과 민주주의 회복, 소수민족 탄압 중단 촉구 결의안'은 국민의힘 원로 정진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이다. 쿠데타와 관련한 문 대통령 입장은 3월 6일에서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나왔다. 규탄 수위는 어느 민주주의 국가의 수장보다 낮았다. 현 정권이 민주 정부라고 자칭하고, 여당은 다음 정권 유지와 관련해 '민주 정부 4기를 만들자'고 내세우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까지의 당정청 행보는 미얀마 국민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미국 이념의 상징은 '자유'다. 미국은 자유의 이상과 가치에 충실하고, 민주주의에 기민하다. 이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미얀마 제재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동참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진 미지수다. 인권에 관심이 있는지 또한 의문으로 남아 있다.

미얀마 유일의 합법 정부 인정을 요청한 미얀마 민주 진영의 국민통합정부가 최근 한국 정부 인사를 접촉해 공식 정부로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월 12일 미얀마에 군용물자 수출을 금지하기로 하는 등 군부 제재에는 나서고 있지만, 국민통합정부 승인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란 점에서 신중을 기하겠단 분위기다.

'Save Myanmar, Korea Loves Myanmar, 미얀마 힘내라' 등 SNS에선 평화의 상징으로 손가락 세 개를 들고 찍은 사진과 응원이 줄을 잇고 있다. 의회 차원에서 목소리도 내고 있지만, 정부는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필요한 행동과 조치를 미루고 있다. 총성 속 쓰러지고 있는 미얀마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심할 때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