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는 '진흙탕 맥주'가 불편하다
[기자수첩] 소비자는 '진흙탕 맥주'가 불편하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05.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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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기업들에게 2020년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이 큰 한 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와 인원·영업시간 제한 등 강력한 방역조치가 연중 이뤄지면서 주류 매출의 60~70%가량을 차지한 유흥시장이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집에서 마시는 홈술과 혼술 트렌드로 가정용 주류시장 성장은 가팔랐지만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흥시장에서의 타격을 메우기엔 벅찼던 게 사실이다. 업계 특성상 프로모션과 마케팅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없다보니 제품 홍보는 언강생심(焉敢生心)이었다. 하루빨리 분위기가 나아지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 올 들어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도 이전보단 다소 완화되면서 주류업계는 조금은 숨통이 트이게 됐다. 오비맥주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야심차게 기획한 신상품 ‘한맥’을 내놓고, 1등 브랜드 ‘카스’를 투명병으로 전격 교체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맞수인 하이트진로는 ‘테라’ 맥주 출시 3년차를 맞은 올해 반드시 카스를 잡고 1등 브랜드로 도약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맥주업계 3등 롯데칠성음료도 지난해 내놓은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로 맥주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고자 글로벌 빅모델 ‘방탄소년단(BTS)’을 앞세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들 올해를 반전의 해로 삼고 맥주 성수기에 맞춰 샅바싸움이 치열한 모습이다. 

이 같은 경쟁은 최근 들어 과열되면서 소비자 보기에도 눈살 찌푸릴 만큼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영업직원들 간의 홍보물 자리 다투기가 유독 심한 모습이다. 오비맥주는 한맥 모델인 배우 이병헌 등신대가 수차례 분실된 주범으로 경쟁사인 하이트진로를 지목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하이트진로는 발끈하며 그간 오비맥주가 했던 홍보물 훼손 사례들을 수집해 맞고발 하겠단 입장이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모두 코로나19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적극적인 투자로 신제품을 내놓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많은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아온 기업들이다. 주류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답게 선의의 경쟁으로 시장을 더욱 키워야 할 판에 어찌된 일인지 진흙탕 싸움만 하고 있다. 각각 1등 맥주, 대세 맥주라고 외쳤지만 결과적으론 소비자들에게 ‘진흙탕 맥주’ 모습만 보이게 된 꼴이다.

국세청과 주류거래질서확립위원회는 최근 오비맥주·하이트진로 등 대형 주류사를 불러 다툼과 관련해 주의를 줬다고 한다. 이후 이들이 어떤 모양새를 취할지는 알 순 없지만 소비자들이 늘 예의주시하고 있단 점을 망각하지 말길 바란다. 주 소비층인 MZ세대들은 착한 기업에게 이른바 ‘돈쭐’ 내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손절’ 하는 게 특기다. 위축된 주류시장을 회복시키길 원한다면 진흙탕 싸움을 하루빨리 거둬야 한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