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명예 퇴진 홍원식…'새로운 남양' 신뢰 회복 급선무
불명예 퇴진 홍원식…'새로운 남양' 신뢰 회복 급선무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1.05.0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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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 여론 압박 '불가리스 사태' 3주 만에 직접 사과·사퇴 결정
51% 최대주주 진정성 의심…일각선 역사·제품력 별개로 봐야
오너 지분 조정 등 자정노력 시급…남양유업 "차근차근 풀겠다"
지난 5월4일 남양유업 서울 본사에서 홍원식 회장이 공식 석상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사퇴 의사를 밝힌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4일 남양유업 서울 본사에서 홍원식 회장이 공식 석상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사퇴 의사를 밝힌 모습. [사진=연합뉴스]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사태’는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홍원식(71)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머리를 숙이고 사퇴로 이어지는 후폭풍을 불러왔다. 

구체적인 혁신방안 발표 없이 많은 지분을 그대로 쥔 홍 회장의 행보를 두고 ‘눈 가리고 아웅’ 아니냐는 일부 비판이 나오지만, 일각에선 이번 일을 거울삼아 기업 이미지 쇄신과 소비자 신뢰 쌓기에 적극 나서 새로운 남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홍원식 회장이 대국민사과와 사퇴 의사를 밝힌 가운데 불가리스 사태에 대한 수습을 정리 중이다. 

본지는 앞서 지난 4월26일 보도한 <자승자박 '불가리스 논란' 2주…남양 오너가 사과·쇄신 여론 확산>에서 남양유업이 불가리스 논란에 대해 오너가 사과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지난달 13일 ‘코로나 시대의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으로부터 3주, 본지 보도 일주일여 만에 남양 오너인 홍원식 회장이 직접 자리에 나와 대국민사과와 함께 공식 사퇴했다.

홍 회장은 4일 서울 논현동 본사 대강당에서 “불가리스 논란으로 실망하고 분노했을 모든 국민들과 임직원, 대리점주, 낙농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자식들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식 밝혔다.

불가리스 논란은 지난달 심포지엄 당시 박종수 남양유업 중앙연구소장(상무)가 직접 주제발표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H1N1)에 대해선 99.999%의 항바이러스 효과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77.78% 억제를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남양유업은 당시 “꾸준히 음용할 경우 인플루엔자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후 불가리스 매출은 급증했고, 남양유업 주가도 크게 오르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남양유업이 인체 임상실험도 없이 순수 학술 목적이 아닌 자사 홍보 목적의 발표를 한 것으로 판단하고,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여겨 지난달 15일 세종시에 남양유업 세종공장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같은 건으로 경찰에도 고발해 현재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사건을 배당 받아 수사를 진행 중이다. 같은 달 30일엔 남양유업 본사가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여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소비자 분노가 표출되고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나타나며 남양유업에 대한 여론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남양유업과 관계된 협력사와 전국의 대리점, 원유를 공급하는 낙농가까지 유·무형적 피해도 쌓여만 갔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앞서 5월4일 남양유업 서울 본사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박성은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앞서 5월4일 남양유업 서울 본사에서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박성은 기자]

홍 회장은 전방위적으로 둘러싼 압박에 큰 부담을 느껴 은둔 경영을 깨고 직접 사과와 함께 사퇴를 결정했다. 그는 2013년 ‘대리점 갑질’ 사건과 2019년 외조카 ‘황하나 마약사건 연루’ 때에도 자신 명의의 사과문은 냈지만 공식 석상에 나온 적은 없었다. 

홍 회장 사퇴에 대해 다소 예상 밖이었단 의견도 있다. 남양에 대한 애착이 워낙 크고, 기업 위상을 다시금 일으켜 명예롭게 물러서고 싶었던 의지가 높았단 이유에서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홍 회장 자신이 경영에 관여할 때 반드시 정상화시키겠단 의지가 무척 컸던 걸로 알고 있다”면서도 “지난해 경쟁사 댓글 비방과 이번 불가리스 논란도 홍 회장이 무너진 남양의 입지를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탈난 꼴”이라고 주장했다.  

홍 회장은 결국 사퇴했지만 여전히 남양유업의 최대 주주다. 현재 남양유업 지분의 51.68%를 보유 중이다. 홍 회장 아내인 이운경(0.89%), 동생 홍명식(0.45%), 손자 홍승의(0.06%) 지분까지 합치면 총수 일가 지분은 53.08%로 지배력은 막강하다. 홍 회장 장남인 홍진석 상무(현재 보직 해임)와 차남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지분이 없지만 경영엔 참여하고 있다. 홍 회장 사퇴를 두고 진정성이 부족하단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남양유업이 가진 제품력과 역사, 성장성 등이 오너가의 패착으로 모두 가려져선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964년 설립된 남양유업은 57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대표 유가공기업이다. 대리점 갑질 사건 전까진 서울우유와 함께 톱2 브랜드였다. 지금은 매일유업에 역전 당했지만 ‘맛있는우유 GT’와 ‘아인슈타인’, ‘아이엠마더’. ‘불가리스’를 중심으로 우유와 분유, 발효유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우유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남양유업의 우유 제품들. [사진=박성은 기자]
남양유업 본사에 새겨진 기업 로고. [사진=박성은 기자]
남양유업 본사에 새겨진 기업 로고. [사진=박성은 기자]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역사 있는 기업인데 오너가의 잘못된 판단과 언행이 소비자 불신을 낳으면서 회사 직원들은 물론 대리점과 협력사, 낙농가에 피해를 준 꼴이지만 여태껏 제품력에 대한 부정 이슈는 딱히 없었다”며 “오너 지분을 낮추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는 등의 자정 노력으로 브랜딩을 다시 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남양유업 이슈가 유가공 시장 전반으로 불똥이 튀는 건 아닌가 싶다”고 우려하면서도 “남양 퇴출은 유가공 시장 파이를 더 쪼그라들게 하는 것인 만큼, 시장 전체적으론 남양이 소비자 신뢰를 다시 쌓아 정상화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남양유업은 추후 별도의 이사회를 꾸려 쇄신방안을 마련하겠단 방침이다. 이사회는 사내이사 4인, 사외이사 2인으로 구성됐다. 4인 사내이사 중 홍원식 회장과 모친 지송죽 여사, 장남 홍진석 상무 3명이 오너가다. 

홍 회장은 사퇴했고, 홍 상무는 회삿돈 유용으로 지난달 보직 해임됐다. 지 여사는 비상근이다. 나머지 1명은 앞서 3일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힌 이광범 대표다. 일단 이 대표는 차기 대표가 선임될 때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차기 이사회 구성과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회장 지분 문제나 전문경영인 도입 등의 주요 사안들은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풀어갈 것”이라며 “차기 이사회 구성과 일정은 정해지는 대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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