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상황 '대출금 감면' 법제화 논란…금융권 "모럴해저드 우려"
재난 상황 '대출금 감면' 법제화 논란…금융권 "모럴해저드 우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1.04.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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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책임 이행 의지 약화·금융사에 과한 부담 등 부정적 시각
법안 발의 민형배 의원 측 "현행 지원에 대한 근거 만들자는 취지"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사진=신아일보DB)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사진=신아일보DB)

재난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본 채무자가 금융사에 대출원금 감면 요청을 할 수 있게 하는 법 개정안을 두고 금융권의 우려가 크다. 채무자의 책임 이행 의지가 약해질 수 있고, 금융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을 발의한 민형배 의원 측은 현재도 이뤄지고 있는 금융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든다는 취지인데 논란이 앞서가고 있다며, 법 문구는 법안 심사 과정에서 다듬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26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은행법 개정안에는 '재난으로 인해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 여건 악화로 소득이 현격히 감소한 사업자 또는 그 사업자의 임대인은 대통령령에 따라 은행에 대출원금 감면, 상환기간 연장, 이자 상환 유예 등을 신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 재난이란 태풍과 홍수, 황사 등 자연재난에 화재와 붕괴, 폭발, 교통사고 등 사회재난을 포함한다.

금소법 개정안에는 재난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금융상품판매업자에게 금융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명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은행법 개정안과 비슷한 취지지만 적용 대상을 은행 외 다른 금융기관까지 확대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금융기관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제도를 믿고 책임을 소홀히 하는 모럴해저드(Moral hazard)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정책자금으로 저리 이자로 대출을 해준다고 할 때도 사람들은 그게 정부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는데, 고객들이 이런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심각한 모럴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사기업인 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등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이와 관련해 민형배 의원 측은 현재도 이뤄지고 있는 금융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재난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이라며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민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 같은 상황이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재난 상황이 있을 때 자동으로 발효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라며 "재난 상황에서만 단기적으로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식으로 논란이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자영업자들의 빚을 전액 탕감시켜준다거나 그 손실을 은행이 다 부담하게 한다거나 이런 내용으로 기사가 와전돼서 나가고 있다"며 "대출원금 일부 감면이라는 표현이 조금 과하다면 심사 과정에서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등 표현으로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무위는 개정안에 대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에 따라 대출원금 감면과 이자상환 유예 등 조치가 이뤄질 경우 소상공인 등의 경영상 어려움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출 원금 감면을 의무화하는 해외 입법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금융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충당금 적립이나 자기자본 확충 등 충분한 손실흡수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본건전성에 미치는 영향도 함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