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명백한 스토킹에 의한 범죄’라고 규정했다. 피해자가 김태현의 연락을 거부하는 명시적인 의사를 밝혔음에도 지속적으로 괴롭혔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김태현에게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 처벌법)’이 아닌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 혐의가 적용됐다. 스토킹 처벌법이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9월부터 시행되는 탓이다.
현 시점에서의 ‘스토킹’에 관한 처벌법 부재는 우리 사회가 스토킹 범죄에 얼마나 안일하고 관대하게 대처했는지 방증한다.
그동안 다수의 유명 연예인들이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며 주거침입·살해협박 등의 피해를 호소해왔다. 하지만 대다수는 이를 그저 극성팬의 행동으로 치부하거나 유명세에 따른 부수적인 일 정도로 가볍게 여겼다.
때문에 처벌 수위 역시 매우 낮았다. 지금껏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되면서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스토킹은 일반인을 대상으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그 피해 역시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스토킹 범죄를 ‘개인간 애정문제’ 정도로 가볍게 취급하는 사회적 풍토가 피해자들로 하여금 신고를 주저하게 만들고 피해규모를 키운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도 경남 창원에서는 스토킹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가해자는 10년 동안 이용하던 단골식당 주인 A씨(60)에게 고백했으나 거절당하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앙심을 품고 미리 흉기를 준비해 창원 성산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A씨를 숨지게 했다.
국회는 스토킹으로 시작된 강력범죄가 이어지자 지난달 스토킹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상대방이 거부하는데도 계속 접근해 불안감·공포심을 유발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또 경찰이 피해자나 피해자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 전화 등 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등의 조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관련법 마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범죄 방지 효과 등에 의문은 남는다.
우선, 접근금지 조치의 경우 경찰이 검찰에 신청하고 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만 시행할 수 있다. 지속 기간이 최장 6개월에 불과하다는 것도,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것 역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스토킹 범죄는 대부분 평소 친분이 있던 사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치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 범죄로 인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강력처벌과 피해자 보호대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