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은행 '교묘한 행장과 무능한 노조'의 찰떡궁합
[기자수첩] 기업은행 '교묘한 행장과 무능한 노조'의 찰떡궁합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1.04.1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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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원 행장이 진행하는 부분이라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른다"

"김형선 노조위원장이 은행장과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어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업은행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관계자나 노동조합 입장을 대변하는 관계자 누구에게도 "행장과 위원장이 비공개로 진행하는 사안이라 아는 게 없다"는 말 외에는 들을 게 없었다.

신아일보는 최근 기업은행의 사외이사 후보 선정 과정을 집중 취재했다. 금융권 최초로 노조의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가 탄생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금융권 전반의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노조추천이사제가 필요한지 아닌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회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영 과정을 직원 입장에서 견제해 힘의 균형을 맞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노조의 지나친 경영 개입이 조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취재는 노조추천이사제가 맞냐 틀리냐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금융권 첫 사례를 만들어낼 수도 있는 과정에 집중했다. 그러나 기업은행 사측과 노조 측 모두 간단한 사실을 묻는 말 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기업은행 이사 선임 과정은 윤 행장과 김 위원장 둘이 쉬쉬하며 언론에는 철저하게 철벽을 친 채로 진행됐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부분이 불편해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거둘 수 없었다. 노조 추천 이사가 탄생하든 안 하든 기업은행의 이번 사외이사 선임 과정은 많은 논란을 남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변화는 없었다. 금융권 최초 노조 추천 사외이사는 탄생하지 않았다. 윤 행장은 노조추천이사제를 적극 추진한다던 1년 적 약속을 지킨 것도 아니고 안 지킨 것도 아닌 게 됐다. 금융위원회에 제청한 후보 4인 중 1인을 노조가 추천한 인사로 채웠지만, 이것 외에 그의 행보에서 '적극'이라는 수식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윤 행장에게 노조추천이사제는 물 없이 꾸역꾸역 씹어 삼켜야 하는 인절미 떡 같아 보였다.

금융위가 기업은행 사외이사를 임명한 후 노동조합은 뒤늦게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는 '금융위원장과 기업은행장의 기만에 분노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얼마 전까지 언론까지 따돌리며 굳게 믿고 따르던 파트너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소연했다. 결과론적일 수 있지만, 누가 봐도 예상 가능했던 시나리오를 기업은행 노조 집행부만 왜 모르고 있었을까? 이제 와서 분노하면 무슨 소용일까?

이번 기업은행 사외이사 임명 과정의 주요 출연자들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면, 윤종원 행장은 교묘했고, 김형선 노조위원장은 무능했다. 이 둘의 교묘하고 무능한 조합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국민은행 등 여러 국책·민간은행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금융권 최초 노조 추천 이사 탄생 기회를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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