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잔인한 달, 4월이 주는 의미
[기고 칼럼] 잔인한 달, 4월이 주는 의미
  • 신아일보
  • 승인 2021.04.04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한 해가 벌써 4분의 1이 지나갔다. 연초 작심한 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봄기운도 완연해지고 겨우내 움츠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 삶의 의욕이 저절로 생겨나는 찬란한 계절이다. 그런데 영국 시인 엘리엇(T.S. Eliot)은 ‘황무지’라는 시(詩)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시인은 이렇게 좋은 계절을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그것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이유야 문학적으로 해석할 일이겠지만 나는 매년 4월이 되면 “4월이 가장 잔인한 이유는 생명이 탄생하는 화려한 계절이지만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라는 마지막 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리스 신화와 잇닿아 있다. 땅의 생산력을 관장하는 만물의 여신은 가이아(Gaia)에게는 페르세포네(Persephone)라는 딸이 있었다. 

딸은 지하의 신, 하데스(Hades)에게 납치됐고 가이아는 협상을 통해 3분의 2는 엄마인 가이아 품에, 3분의 1은 지하세계에 있는 것으로 합의한다. 재미있게도 대지의 신인 가이아에게 있는 동안은 곡식이 잘 자라고, 나머지 기간은 겨울로, 우리가 알다시피 곡물이 잘 자라리 않는다. 

그리스 신화처럼 포근한 엄마의 품에서도 영원히 있을 수 없는 게 페르세포네 신세와 사람의 삶이 슬프게도 닮아 있다.

나는 가끔 아들, 딸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키우는 재미도 느끼며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보면서 키우지만 인간의 숙명처럼 우리 아이들의 삶도 여느 삶처럼 죽음이라는 끝이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가장 아름답게 태어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내가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하고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게 되는 시작인 것을 안다면 바로 태어나는 순간이 가장 잔인한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은 늘 이별을 전제로 한다. 

문득 시인 김영랑의 시(詩)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생각난다. 

이 시에서 피면 곧 지고 말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봄을 여읜 슬픔이 있더라도, 떨어질 것을 알고 있지만 기다리는 것이다. 

끝을 알지만 시작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따뜻한 봄날 피어날 꽃들이 피기를 기다리고 그 모습을 즐기지만 우리는 그 끝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오고 꽃들이 피기를 또다시 기다린다. 

또 지게 될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4월은 가장 잔인한 것 같다. 

모든 것의 시작이 곧 끝임을 알기 때문이다.

/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