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이해충돌방지법, 왜 9년째 해묵었을까
[이슈분석] 이해충돌방지법, 왜 9년째 해묵었을까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3.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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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무위,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관련 공청회 실시
2013년 처음 나왔지만 "정상적 공무 방해할 수도" 좌절
사적이해관계자·사전등록제 등 여전히 모호 '해법 관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윤관석 정무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윤관석 정무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년째 해묵은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진 의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 임시국회 안에 제정법을 처리하겠단 입장이지만, 사적 이해관계자 정의를 어디까지 규정하느냐 여부 등 법리적으로 적용할 기준이 모호해 벌써부터 '유명무실'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7일 전체회의를 열고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과 관련한 공청회를 진행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을 처음 국회에 제출한 기관은 국민권익위원회로, 지난 2013년 '부정청탁을 금지하고,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한다'는 포괄적 내용을 담았다. 권익위는 당시 8개 정부 기관의 의견을 취합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등 시민·사회 단체와도 공청회를 거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공직자의 정상적인 공무를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국회의원의 경우 사적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직무를 배제할 경우 의정(의회정치) 활동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해당 법안은 이해충돌 규정은 빠진 채 지난 2015년 부정청탁 금지 규정만 담은 법안을 대안으로 통과시켰는데,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다.

이후 관련 논란이 터질 때마다 국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우후죽순으로 이해충돌방지법이 나왔지만, 계속해서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번 국회에서도 지난해 6월 25일 정부가 법안을 낸 이후 민주당 박용진·이정문·유동수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배진교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게 있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진행한 이해충돌방지법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조성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17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진행한 이해충돌방지법 관련 공청회에 참석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조성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일부 임직원의 100억원대 사전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민주당은 15일 '공직자 투기·부패 근절 대책 태스크포스(TF·전담반)' 첫 회의를 열고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 개정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 등을 3월 국회 안에 처리하겠다고 알렸다.

입법 쟁점은 공직자의 직무상 사적 이해관계자를 직계가족으로 한정할 것인지, 친족까지 늘릴 것인지 여부다. 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부당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법의 취지인데,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을 보면 '공직자는 직무 관련자가 사적 이해관계자임을 알게 되면 기관장에게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회피를 신청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를 예로 들면 국토교통부나 토지 주택 관련 공기업, 국회의원이나 지방의회의원 등 개발지 선정 및 인·허가와 관련한 공직자 전원은 본인은 물론 가족 명의로 해당 부지에 땅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이번 공청회에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미 공무원 행동강령이 있지만, 이것만 갖고는 제도적 헛점이 많다"며 "사전등록제를 도입해 사후적으로 몇 년 뒤에 알게 된 사안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해충돌 대상이 누구인지 사전에 등록해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맞다"며 "사적 이해관계와 관리 대상 직무를 16개 직무가 아닌, 모든 직무로 명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박 의원은 또 "여러 논란은 있겠지만, 김영란법 수준으로 이해충돌방지법을 끌어올려 교사와 언론까지도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역시 "대상은 넓게 하되, 대상을 몇 가지로 명확히 규정해 법적 효과를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기관 종사자가 포함되는 청탁금지법과 비슷하게 이해충돌방지법 대상도 법의 조항이나 적용 대상을 등을 명확하게 몇 가지로 한정을 지으면서도 넓고, 분명하게 하도록 손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이해관계자 사전등록은 행정적 비용 부담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논의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전등록제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며 "현재 정부안에 따르면 적용대상인 공직자가 200만명에 달하기 때문에 그 인원과 관련된 사적 이해관계자를 다 등록해서 관리하는 게 가능할까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태범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경우 "부패 방지 및 공직 윤리의 제고를 위한 법령이 있음에도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매우 미비한 것이 현실"이라며 "LH의 경우에도 내부 정보의 활용 등 이해충돌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명확성이 떨어지고 실질적 규제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고언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정보를 공개하고 이해충돌을 심사할 수 있는 독립기구를 둘 필요가 있다"며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로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해다. 나아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을 규제하는 국회법 개정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영호 법무법인 율정 변호사,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윤태범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 이천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영호 법무법인 율정 변호사,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현재 법조계 일각에선 땅 투기와 관련해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사건은 공직자가 투기 목적으로 사전에 입수한 미공개 정보를 바탕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이후 보상이 많은 농지로 용도를 변경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만 농지로 등록하고 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 이를 100% 단속해야 하는데, 농지가 워낙 산재했기 때문에 행정 처분까지 못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법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여부가 정부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숙제인 셈이다.

부동산 백지신탁 제도 역시 의견으로 나온다. 지자체·공기업, 국회·광역·기초의원, 국토부 등 부동산 정보에 미리 접근할 수 있는 공직자 전원이 부동산을 백지신탁하게 하자는 취지다. 재직기간 동안 사유재산 운용의 자유를 빼앗자는 취지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와 재산권 보장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나아가 투기의 경우 제3자 명의로 한 차명거래가 대다수란 점에서 제대로 색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편 이날 공청회를 진행한 정무위는 오는 22일 법안심사소위원회와 24일 전체회의에서 이해충돌방지법을 의결한다는 방침이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