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회적 살인자’가 된 보통 사람들
[기자수첩] ‘사회적 살인자’가 된 보통 사람들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1.03.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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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전 하사 사망’ 누가 그를 죽였나
 

변희수 전 하사가 사망했다. 언론은 일제히 ‘사회적 타살’이라며 특정되지 않은 다수를 향해 가해자로 지목했다. 각계에서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고, 유명 연예인들도 추모 메시지를 잇따라 공개했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난 변 전 하사는 육군에서 하사로 복무하면서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의 장래희망은 군인이었다고 하며 오랜 노력 끝에 하사관이 됐지만 성(性)적 이질감은 늘 그를 괴롭힌 것으로 전해진다.

급기야 휴가 중 해외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후 여군으로써 계속 근무를 원한다며 사회단체 등과 연대해 투쟁을 이어가던 변 전 하사와 달리 군은 시종일관 침착했고 끝내 그를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한다며 강제 전역시켜 버렸다.

즉각 사회는 들끓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이번 사건(강제 전역)의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중에는 성소수자가 아님에도 성소수자들을 응원하고, 그들에 대한 법적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이들의 주장에 잘못된 부분은 없다. 분명 고쳐나가야 할 사회 속 아픈 손가락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성소수자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협한 차별론자인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른 목소리, 다른 생각, 다른 시각을 가진 또 하나의 개인일 뿐인데, 단지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매도당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저 맹목적인 혐오가 아니라면 그들(반대론자)의 목소리 또한 귀 기울여 들어줄 시간이 왔다.

성소수자들을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며 반목만을 거듭한다면 목적 없는 평행선 달리기와 무엇이 다를까.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서로 돕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새가 한쪽 날개만을 치켜든다면 추락할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 보호, 물론 필요하지만 그들의 보호를 위해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이들을 맹목적으로 손가락질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변 전 하사가 세상을 떠나자 이번 사망은 ‘사회적 타살’에 의한 죽음이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분명 보호받지 못한 부분이 일면 있겠으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사회적 살인자’로 내 모는 분위기 또한 또 하나의 차별이요, 불평등이 아닐까.

성소수자의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살인자’로 매도할 자격은 그 누구도 없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옹호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차별주의자, 사회적 살인자와 같은 극단적 판단으로 결정짓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환경적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그저 반대편에 서 있다는 이유로 ‘성소수자 반대=혐오론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해 무한한 관용을 가질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할 때다.

또 사회전체가 모두 한 방향만을 믿고 따르는 것은 자칫 인간사회 질서의 모순을 가져 올 수도 있다.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인간복제 실험이 여전히 허용되지 않는 것과 비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성소수자’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언젠가 그들의 존엄성도 더 많은 다수에게 인정되는 날이 오면…변 전 하사와 같은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이 무르익기 전까지 단지 ‘성소수자’인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그저 단편적인 혐오론적 시각으로 역차별 해서도 안 된다.

‘사회적 살인자’, ‘무책임한 혐오론자’로 굳어져 버린 이들,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배척 또한 또 하나의 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그 무엇보다 절실한 오늘이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