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나는 바보가 되었다
[기자수첩] 나는 바보가 되었다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3.1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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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후, 특히 정권 말기에 접어든 시점부터는 세금 내기가 너무 싫어졌다. 근래 허탈감을 준 정책 중 하나는 재난지원금이었는데, 기획재정부를 잡아먹을 듯 몰아붙이며 지급한 돈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단 점에서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묻지마' 4차 재난지원금은 박봉에 시달림에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직장인 입장에서 '호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러 커뮤니티를 보니 다들 생각이 똑같아 헛웃음이 났다.

허탈감을 선사한 두 번째는 정부의 무능이었다. 4년 동안 실체도 없는 투기꾼을 잡겠다고 온갖 난리를 치더니 정작 눈 앞에 있는 진짜 투기꾼은 제대로 처벌도 못하는 블랙코미디(잔혹희극)를 연출해냈다. 틈만 나면 "상생·공정·균형"을 외치던 이 정부 수뇌자의 입은 이번 LH 사전투기 사건이 '답안지를 보며 수능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었단 점에서, 스스로 자격을 상실했단 것을 방증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역차별 논란과 LH 임직원 100억원대 사전투기 외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형평성 문제, 개인에게 불리한 공매도 제도,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다양한 현안이 국민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부인 정경심 씨의 딸 특혜와 후임자 추미애 전 장관의 아들 병역 특혜 등 비위 사건이 이 정부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위선 사건으로 꼽힌다. 특히 조 전 장관 딸 조민 씨의 의사 수련생 합격을 두고 일각에선 '표창장 사본 들고 의사가 됐다'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외에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후원금 횡령 혐의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장시장의 직원 성폭행도 '불공정'에 대한 국민 공분의 뇌관을 건드렸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수뇌부 입에서 "공정"이란 단어가 나오면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을 향해 "검찰권 행사가 자의적이거나 선택적이지 않고, 공정하단 신뢰를 국민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훈수한 것이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퇴임하면서 "공정경제 3법 통과 등 우리 사회의 오랜 숙원을 해결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내뱉은 말은 가증스러울 정도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얼마나 힘드시냐 여쭙기도 송구하다"며 "생명 같은 회사의 존망을 걱정하는 기업인과 직장인 여러분"이라고 부르는 대목이 있었는데, 겸손이나 공감 능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에선 사회부 장관이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성격의 돈을 횡령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는데, 벌써부터 사형 선고 가능성이 나온다. 국민 분노가 크자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이 원하면 부패 사범도 (사형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반면 한국에선 한 LH 직원이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어짜피 한두 달만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질 거라고 다들 생각하는 중"이라며 "차명으로 다 해놓았는데 어떻게 찾을 것이냐"고 비꼬는 글을 올렸다. 덧붙여 "너희가 아무리 화내도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며 다닐 것"이라며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아니꼬우면 너희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라"고 도발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역정에도 아랑곳 않고 국민을 약올리는 게 이 정권을 지내는 공무원 수준이다.

이 정부 들어 바보가 됐다. 정직하고 착하면 바보가 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 나라에도 국민 공분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고, 공직윤리를 엄수하는 양심이 상식적으로 작용하는 날이 오길 아주 살짝 기대해본다. 나 같은 바보가 없길 바라며.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