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ooo경찰서에 늦어도 3시 안으로 와요”
[e-런저런] “ooo경찰서에 늦어도 3시 안으로 와요”
  • 신아일보
  • 승인 2021.02.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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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 (voice phishing) 주로 금융 기관이나 유명 전자 상거래 업체를 사칭해 불법적으로 개인의 금융 정보를 빼내 범죄에 사용하는 범법 행위. 음성(voice)과 개인 정보(private data), 낚시(fishing)를 합성한 용어. 

네OOO 메신저로 절친한테서 급한 용무가 있으니 오전에 돈을 빌려주면 오후에 갚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던 배우자가 300만원을 입금해 줬다더니 약 10분 후, 바로 갚을 거니까 200만원을 더 빌려달라고 해서 총 500만원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보이스피싱’ 이구나 감을 잡고 바로 “빙신아!”를 날린 적이 있다.

누가 요즘 메신저로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할까?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넘어 전국을 휩쓰는 이 때 말이다.

“친구한테 전화로 확인은 해봤니?”라고 물었더니 남자끼리, 더욱이 절친한테 그 같은 확인은 가오(일본어:얼굴, 체면)가 떨어진다나.

“입금자명은 친구 이름 맞니?”라고 물었더니 “아니 그 친구 회사 경리 이름으로 보내라던데...”라면서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그 날 이후 그 남자는 빙신, 등신, 머저리로 통했다. 보이스피싱 기사가 쏟아질 때면 불꽃처럼 째려보는 내 눈을 피해 슬며시 자리를 비우고는 주방 한 켠 구석에서 소주를 들이켜기도.

그렇게 7년이 흐른 2021년 2월25일 오전 9시29분. 업무에 정신없던 내게 전화가 왔다.

“생년월일 0000, 이름 000 맞으시죠? A라는 사기 혐의자가 체포됐는데 그 안에서 000님 신분증과 통장 사본이 나왔어요. 피해자들이 000님 이름으로 6500만원 사기 혐의로 고소를 했습니다”

긴 통화가 이어져도 그럴 리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자 “늦어도 ooo경찰서에 3시 안으로 와요”

고동치는 심장을 안고 부장님께 다가갔다. “저 ooo경찰서에 다녀와야 해요. 제가 사기 혐의로 피소됐대요”

떨리는 손, 후들거리는 내 다리와 달리 부장님은 침착했다. “나도 검찰청에서 그런 전화 받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확인해 봐요”

생각해 보니 전화를 건 형사 이름도 모르고 경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유선 전화번호를 검색해 해당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더니 “A라는 사기 혐의자도 검색이 안 되고, 전화주신 분 이름도 검색이 안 되네요. 접수된 건이 없어요”

순간 멍. 빙신, 등신, 머저리가 된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이스피싱 사기는 당하지 않았지만 아침을 알렸던 그 전화가 보이스피싱 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만약 업무를 뒤로하고 000경찰서로 달려갔다면…그 후 모든 것을 깨달은 내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잘 될거라며 위로까지 해주던 너무나 진짜 같았던 말투와 목소리.

이제라도 배우자 그 남자에게 사과해야겠다. “나도 빙신이더라고! 미안하다고!”

/이상명 스마트미디어부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