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골목식당보다 못한 게임사 '영업비밀'
[기자수첩] 골목식당보다 못한 게임사 '영업비밀'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1.02.2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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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궁색했다. 최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전부 개정안에 대응해 내놓은 국내 게임업계의 논리를 보고 든 생각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협회)는 지난 15일 ‘게임법 전부개정안’ 관련 의견서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는 상당한 비용을 투자해 연구해야 한다”며 “사업자들이 비밀로 관리하는 대표적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게임사 자율규제에 맡겼던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확률 공개’를 법률로 강제화하려고 하자 업계 대변자인 협회가 반발한 것이다. 협회는 “고사양 아이템을 일정 비율미만으로 제한하는 등 밸런스 조절은 게임 재미를 위한 가장 본질적인 부분 중 하나”라며 “확률정보 모두 공개는 영업비밀이란 재산권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사전적 의미의 ‘영업비밀’은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생산·판매방법,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경영상 정보를 뜻한다. 협회 주장대로 게임사들은 과금체계(BM, 비즈니스 모델) 연구·구축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확률은 영업비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게임사의 핵심적인 영업비밀은 ‘재미’를 주는 요소여야 한다. 과거 모든 유저들이 일정요금만 내고 동일한 출발점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던 시절 ‘아이템 획득확률’은 나름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유저들은 동일한 몬스터를 잡아도 운에 따라 가치가 다른 아이템을 얻었고 어쩔 수 없는 결과로 받아들였다.

반면 현재 게임사가 공을 들여 설계했다는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확률은 유저들에게 어떤 재미를 주고 있을까. 국내 게임사의 ‘유료 확률형 아이템’ 도입 후 일부 유저는 낮은 액수로 좋은 아이템을 얻었고 수천만원을 들여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한 이들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게임사의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유저들의 불만은 커졌고 일각에선 게임사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확률을 조작한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저비용으로 좋은 아이템을 획득한 이들과 게임사만 재미를 느낀 것이다.

골목에 자리한 맛집은 특별한 레시피를 영업비밀로 삼는다. 대중에게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아도 비난하지 않는다. 손님들은 그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맛을 느끼기 위해 방문하기 때문이다. 게임사들은 어떤가. 유저들이 베일에 쌓인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획득확률에 재미를 느껴 플레이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히려 확률 공개는 지갑을 연 유저들의 알 권리기도 하다. 이정도 영업비밀을 공개해 경쟁력을 잃을 것 같다면 사업을 일찌감치 접는 게 낫다.

특히 게임업계는 그간 사행성 논란이 일 때마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자율규제로 공개하고 있다고 대응했다. 개정안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범위를 좀 더 넓히긴 했지만 공개 못할 정도는 아니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