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 다 나왔다… 사찰 논란 과열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 이름' 다 나왔다… 사찰 논란 과열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1.02.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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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사찰' 논란, DJ·盧·朴 시절까지 확산
'고공전' 치열해지자 정계 원로까지 공방 가담
(왼쪽)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국민의힘 박민식 부산시장 예비후보(왼쪽)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16일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은 하태경 의원. (사진=연합뉴스)
(왼쪽)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국민의힘 박민식 부산시장 예비후보(왼쪽)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지난 16일 박지원 국정원장의 발언과 관련하여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오른쪽은 하태경 의원. (사진=연합뉴스)

범여권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의 조직적 정치인 사찰이 있었다'며 문건까지 내놓자, 보수 야당도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사찰이 있었다'고 증거를 제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고공전이 심화한 가운데 소싯적 정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일부 거물까지 공세에 가담하면서 판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18대 국회의원 전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문화계 인사 등에 대한 불법사찰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며 "국회 정보위원회 의결을 통한 불법사찰 자료 열람 등 국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상을 반드시 밝힐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날 정치권에선 국정원이 인천 남동구청장이던 배진교 정의당 의원을 사찰했단 내용의 문건이 돌았다. 사찰 문건 제목은 '야권 지자체장의 국정운영 저해 실태 및 고려사항'으로, 날짜는 이명박 정부 중반기 2011년 9월 15일이다. 사찰 대상으로는 광역자치단체장 8명과 기초자치단체장 24명의 이름이 올랐는데, 이들은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전신 '민주당'과 정의당 전신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박지원 국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는 (불법사찰) 중단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속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한 것을 거론하면서 "이게 사실이면 이명박 정부가 시작한 불법 사찰이 박근혜 정부까지 8년 동안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지속된 셈"이라고 부각했다.

그러면서 야당을 향해 "국민 앞에 먼저 진실을 고백하고, 진상 규명에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연일 '저급한 정치공세, 습관성 정치공작'이라며 책임 회피를 위한 전형적 물타기 공세를 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야당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박민식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같은 날 "김대중 정부 때 역대 국정원 사상 가장 조직적으로 불법 도청이 이뤄졌다"며 당시 국정원이 도청했다는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박 예비후보에 따르면 DJ 정부 국정원은 지난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R2' 6세트, 휴대폰 감청장비 'CAS' 20세트를 활용해 정치인과 언론인, 기업인 등 1800명의 통화를 도청했다. 박 예비후보는 지난 2004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아 DJ 정부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을 구속·기소한 '특별수사통' 출신이다. 법원은 당시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박 예비후보의 이같은 주장은 DJ 측근이었던 국정원 박 원장이 'DJ 정부에선 불법 사찰이 없었다'고 말한 것과 대비한다. 박 예비후보는 이날 △민주당 소장파 의원 통화 △한나라당 개혁파 의원 통화 △햇볕정책 반대자 통화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선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노무현 정부에서도 (국정원의) 사찰이 있었단 것이 임기 말에 일부 확인됐다"며 "이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지도력 공백 현상)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이란 점에서 "답변해야 할 의무가 생긴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야 설전이 치열해지자 일부 원로 인사까지 나서고 있다.

6선 출신의 민주당 소속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18대 국회 때 휴대폰 감도가 가끔 뚝 떨어지고 이상한 소리가 날 때가 있었다"며 "휴대폰이나 국회 전화를 안 쓰고 추운 겨울에도 공중전화를 사용할 정도로 도청을 의심했다"고 부각했다.

반면 이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같은 라디오 방송에서 "옛말 한서에 '모기가 떼로 날면 천둥소리가 나고, 거품도 많이 쌓이면 산을 떠내려가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정권이 하는 행태가 꼭 그렇다"며 불법사찰 주장에 대해 "정치 공작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사찰이라고 하는데, 김대중·노무현 정부할 것 없이 국정원의 정보관 또는 조정관이라는 IO(정보담당관)라는 게 있다"며 "IO의 업무 보고를 모으면 그게 일종의 정보 보고라고 하고, 어느 정권에나 다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은 당초 이번 사건을 고공전 대상으로 올리면서 '4·7 재·보궐 선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도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형준 부산시장 예비후보에게 '진상을 규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박 예비후보는 현재 유력한 부산시장으로 꼽힌다.

이 전 부의장도 이날 라디오에서 "(박 예비후보가 당시) 정무수석이면 사찰 보고를 받을 수도 있는 지위였기 때문에 성의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며 "MB가 보고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몰랐다면 납득이 되게 해명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청와대 근처도 안 가 본 이 전 부의장이 구조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특임장관을 해서 잘 알지만, 각 수석이 자기 업무 외에 다른 사람 업무에는 관계도 안 한다"고 반박했다.

이 장관은 "(수석 간) 서로 얘기도 안 하고, 알려고도 안 하는데 민정수석실에서 한 일을 정무수석이 어떻게 알겠느냐"며 "박형준 당시 정무수석은 개인 성격상 법에 어긋나는 일은 근처도 안 가는 사람이고, 오히려 그런 걸 한다면 못 하게 할 사람"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에 대해 "정부기관에서 언론에 (주장을) 흘리고, 관제 언론이 확대·재생산하면 민주당의 홍위병이 나서면서 문제를 키우는 것"이라며 "일종의 정치 공작의 하나로 본다"고 비판했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