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제스형!
[기고 칼럼] 제스형!
  • 신아일보
  • 승인 2021.01.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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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현 작가(미국 주식 스타터팩 저자)
 

작년 중국의 외교당국을 일컫는 전랑외교(戰狼外交)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다. 전랑은 싸우는 늑대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흥행한 액션영화 전랑 2에 빗댄 단어다. 별명에 맞게 중국 외교관들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1월 중국이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홍콩 국회의원 4명을 축출했다. 이 사건에 대해 첩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5개의 눈)를 구성하는 5개국(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이 비난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파이브 아이즈를 향해 “그들의 눈이 몇 개이든,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누구라도 눈이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며 보복을 암시했다. 문명국가의 외교부에서 나온 성명인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각국 외교부의 임무는 상대국과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갈등이 생기면 주먹부터 들이대고 보는 중국의 외교는 도리어 분쟁에 기름을 붓고 있다. 

강경한 외교 정책이 중국에 이익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 중국은 호주에 대한 보복조치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석탄 수입 금지 후 중국 남부는 대규모 정전사태를 맞았다. 광둥성에서는 예고 없이 1시간 정전이 발생해 시민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기도 했다. 중국 발전량의 약 70%는 화력발전에서 얻는다. 화력발전에 쓰이는 석탄 3분의 1은 지금껏 호주산 석탄으로 충당해 왔다. 호주산 석탄을 금지하자 연료가 부족한 발전소들이 전력공급을 줄인 것이다. 이해득실도 모른 채 그저 굴복을 받아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전랑외교의 현실이다.

전랑외교라는 말이 최근에 와서야 등장했지만, 조짐은 몇 년 전부터 보였다. 지난 2017년 사드 배치로 한중관계가 경색됐을 때 중국 외교부 천하이 부국장이 방한했다. 천 부국장은 한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고 떠났다. 

지금 중국의 언행은 대국이란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국민당의 장제스가 지도자로 있던 시절 중화민국이 차라리 대국 기준에 훨씬 부합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은 일제 침략으로 우리와 함께 큰 치욕을 겪고 있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듣자 당시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할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니 감격스럽다”고 칭송했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한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 독립이 선언된 것은 장제스가 연합국 정상들을 설득한 공이 컸다. 

국민당이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 땅으로 옮겨 간 후에도 장제스는 일화를 남겼다. 1963년 한국에 흉년이 들어 한국 정부는 대만에 김신 대사를 보내 쌀 5만t을 사 오라 지시했다. 마침 대만도 흉년이라 대만 행정원장은 쌀을 팔 수 없다며 거부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장제스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한국에 쌀 5만t을 줬다. 그는 “우리가 대륙을 아직까지 갖고 있었다면 55만t 정도는 거저 줬을 것이다. 한국 같은 각별한 나라에 쌀을 돈 받고 팔아야 하는 것이 애석하다”는 말을 전했다. 대만은 한국보다도 훨씬 작지만 이런 나라를 소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라가 작아서 소국일까, 나라가 커서 대국일까? 대국과 소국을 가르는 것은 땅의 크기가 아니라 약자를 돕는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 세상이다. 그래서 오늘 밤 외치고 싶다. 아 제스형! 장제스형! 중국이 또 왜 이래!

/정두현 작가(미국 주식 스타터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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