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은 여자였다면 사람들이 내 얘기를 좀 더 정중하게 들어줬을까요?” 지난 8월 개봉한 한국영화 ‘69세’ 속 주인공 효정은 관객들을 향해 끊임없이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제목처럼 올해 69세인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사건 후 효정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모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그녀를 치매환자 취급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효정 역시 자신이 기억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 상황이 맞는지 혼란을 겪으며 사건의 진실은 미궁에 빠진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효정을 대하는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는 분명 잘못이 있어 보인다.
나이 든 사람은 그런 범죄를 당할 리 없다는 무시하는 듯한 말들. 효정은 사람들의 폭력적인 말과 편견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단지 영화 속 노인들의 세상이 이토록 차갑게 그려진 것일까.
중학생 시절, 시내버스에서 어르신에게 폭언을 하는 버스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날 80세쯤 돼 보이는 할머니는 한 손에 보따리를 들고 천천히 버스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아구구’ 신음을 뱉으며 다리를 짚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무릎 관절이 아프신 듯했다.
할머니가 버스에 오르는 동안 버스는 출발하지 못했고, 이에 50대쯤 돼 보이는 버스기사는 “아! 할머니 빨리 타요, 빨리”라며 짜증을 냈다. 힘겹게 버스에 탑승한 할머니가 요금통에 차비를 넣는 순간, 버스기사는 재빨리 버스를 출발시키며 아무렇지도 않게 툭, “늙으면 집에나 있을 일이지”라는 말을 뱉었다.
할머니는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아무 대꾸도 없이 빈자리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 전 목격한 일이 지금까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을 만큼 당시 버스기사의 무례함에 충격을 받았고, 나의 침묵이 부끄러웠으며, 할머니가 받았을 상처가 걱정됐다.
때로 일부 사람들은 나이든 사람을 비하하는 말을 가볍게 던지거나,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혐오 섞인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는 아주 공평하게, 매순간 같은 속도로 늙고 있음에도 말이다.
결국 노인들에게 쏟아낸 독이든 말들은 미래의 자신을 향해 조준된 화살인 셈이다. 언젠가 스스로가 쏜 화살에 마음이 다치고 억울한 일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쉽게 툭 뱉을 수 있을까, 늙으면 집에나 있으라고.
누군가의 나이는 겹겹의 희노애락과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디 그 이야기의 한 자락도 제대로 펼쳐보지 않고서 단지 늙었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권나연 스마트미디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