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말장난은 그만
[e-런저런] 말장난은 그만
  • 신아일보
  • 승인 2020.12.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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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시간에 일찍 도착해 길가에서 지인을 기다리던 중 심심하여 그 동네 한 바퀴를 돌게 됐다. 그러다가 오르막길을 발견했고 그 길을 쭉 따라 올라가 봤다.

그 길 왼편으로는 대략 15~17층짜리 아파트가 쭉 들어서 있었고, 오른편으로는 다세대·연립주택, 빌라 등이 즐비해 있었다. 보통 아파트와 다세대·연립주택 마주하더라도 최소 횡단보도 하나 정도의 너비 간격을 두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너비를 두고 아파트와 다세대·연립주택이 마주해있었다. 그만큼 거리가 매우 가까웠던 것이다.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옛날에는 다 이렇게 지었나보다’ 하고 계속 오르막길을 올랐다.

한참 가니 왼편의 경우 이제 아파트 거의 꼭대기 층이 보였고 오른편은 또 다른 다세대·연립주택이 그저 이어졌다. 끝에 가서는 오른편에 이어 정면에 또 다세대·연립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그 길의 마지막이었다.

그제야 걸음을 멈췄고 내려가려 뒤로 돌아섰다. 그러니까 그때는 이제 기자 눈에 오른편이 아파트 단지, 왼편이 다세대·연립주택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내려가려는 찰나 왼편 다세대·연립주택 한 건물에서 어떤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됐다. 문을 열고 나온 그 사람이 정면으로 가장 먼저 보게 된 건 가깝게 자리한 맞은편 아파트 어느 한 집의 베란다였다.

순간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저 사람은 문 열면 바로 보이는 남의 집 아파트 베란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하는 궁금증이 들어서였을 테다.

물론 아파트가 능사는 아니다. 지역과 위치, 준공연도, 사람의 기호 등에 따라 얼마든지 저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서민 대다수가 선호하는 주거형태임은 사실이다.

때문에 서너 걸음이면 충분한 거리, 아파트와 주택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현장을 보니 누군가 한 사람은 허탈감과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밀려온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아파트촌, 주택촌, 빌라촌에서 그들끼리 살다 보면 남의 동네 사정을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처럼 근거리에서 비교 대상이 된다면 말은 달라질 수 있다.

남의 집 아파트 베란다를 바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내 집 장만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집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말은 어떻게 들릴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임대주택으로 공동체 의식을 찾자”, “호텔을 전·월세 주거용으로 전환하겠다”,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은 전혀 차이가 없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 짓겠다”는 이런 말장난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신아일보] 이인아 스마트미디어부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