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드라마가 다큐로 보이는 시대
[e-런저런] 드라마가 다큐로 보이는 시대
  • 신아일보
  • 승인 2020.10.2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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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민들이 사는 집 세트장도 바꿔야 한다”

현재 방영 중인 한 드라마가 뜻밖의 ‘서민주택’ 논쟁을 낳았다. 일부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집이 마당 딸린 한옥주택인 것을 언급하며,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10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추정되는 주택이 ‘서민의 집’으로 나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드라마가 변화된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이에 다른 측은 한옥을 소유한 사람을 가난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실거주 한옥주택 한 채를 소유했다고 해서 서민이 아니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드라마 속 한옥주택은 세트장일 뿐이다. 제작진은 그저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낡은 느낌을 내는 한옥을 서민들의 주택으로 설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단순히 드라마로 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팍팍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서울에 살고 있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하기란 드라마 같은 일이 돼버린 탓이다.

매일 가난과 역경을 겪으며 현실의 벽에 울부짖는 드라마 속 주인공. 하지만 진짜 서민들의 꿈이 그런 ‘가난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이 돼버린 현실. 설정을 한낱 설정으로, 드라마를 그저 드라마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이런 시대적 상황이 낳은 부산물과 같은 것이다.

최근 ‘1인 가정의 나홀로 생활기’를 담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중년배우 A씨는 3년전 아파트를 구매하지 않은 아쉬움을 토로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A씨는 3년전 서대문구의 아파트 구매여부를 고민했지만 부족한 금액을 대출하는 것이 두려워 구매를 포기했다. 하지만 당시 6억원대였던 이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두배 가까이 상승해 10억원이 넘었고, A씨는 여전히 월세살이 중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50대 초반인 A씨는 “이 나이가 되면 내 집이 있을 줄 알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A씨는 그때 왜 집을 사지 않았냐는 출연진의 물음에 “집값이 떨어질 줄 알았다”면서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었다”고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믿은 자에게 복은 없었고, 빚을 지고라도 집을 구매한 사람만 이득을 봤다. 서울 집값의 비정상적인 폭등에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다 대출을 받는다는 뜻의 신조어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최대한의 대출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을 해서라도 집을 구매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더욱 확산됐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구매한 집.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대출이자에 사람들은 집값의 등락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소위 ‘보통’이라도 되려면 집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각박한 현실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부동산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에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답변했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드라마는 작가가 쓰고 배우가 연기하며 해피엔딩은 주인공이 행복해야 한다. 한 나라의 정책은 정부가 수립하고 실무진들이 추진하며 성공여부는 국민들이 체감해야 한다. 주인공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작가가 해피엔딩이라고 우길 수 없듯,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성공을 정부가 성공이라 주장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주인공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라는 정부의 말을 믿고 싶다. 갖은 고난과 역경에도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드라마처럼 정부의 정책도 성공적인 결과를 달성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국민들이 드라마를 드라마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를, 가상의 이야기인 드라마를 사실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받아들이지 않기를. 더 이상 “정부의 말을 믿었다”는 절규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