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지렁이와 꿀벌
[e-런저런] 지렁이와 꿀벌
  • 신아일보
  • 승인 2020.09.0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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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간 어느 맑은 날 길가에 큰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지렁이는 뜨거운 햇빛이 싫다는 듯 연신 몸을 힘차게 움직였다.

마침 재잘거리며 길을 함께 가던 A씨와 B씨가 이 지렁이를 발견했고 그들의 대화 화제는 곧 이것으로 전환됐다.

A씨는 지렁이를 보며 “아이고 징그러!”하며 냉큼 피했다. 하지만 B씨는 “아이고 불쌍해라!”하며 주위 나뭇가지를 이용해 지렁이를 주워 풀 섶으로 옮겨줬다.

그리고 B씨는 말했다. “내가 아는 C씨는 지렁이가 저렇게 있으면 그냥 손으로 주워서도 흙에다 옮겨놓고 그러더라구…” 지렁이 한 마리를 보고 A씨와 B씨, C씨는 대처법이 다 달랐던 것이다.

며칠 후 A씨는 홀로 길을 가다 또 움직이고 있는 지렁이를 발견했다. 장마철에 수면위로 올라온 지렁이들이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하고 하나둘 발견되는 모습인 듯 했다.

지렁이를 또 본 A씨는 피하려다 얼마 전 B씨가 한 일이 떠올랐다. 이에 이번에는 피하는 대신 B씨처럼 나뭇가지를 구해 그 지렁이를 옮기고자 했다. 마침내 A씨는 그렇게 지렁이를 안전지대에 놓아주었고 “잘 살렴”이라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별 거 아니었지만 A씨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어쨌든 당장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줬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 것이다. 착해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은 그날 종일 A씨를 기쁘게 했다.

꿀벌을 만난 D씨도 마찬가지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D씨의 사무실에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꽤 큰 등치의 벌은 사무실을 윙윙 돌다가 D씨의 책상 위 지갑에 안착했다.

이를 본 사무실 직원들은 “죽여요! 죽여요!”라고 외쳤고 실제 벌을 죽이려 누군가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때 D씨는 이를 만류, 화장지를 조금 떼와 벌을 잡은 후 사무실 밖 빌딩 15층 옥상 쪽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화장지에 뒤덮여있던 벌을 날려주었다. “잘 가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벌은 자유를 찾았다는 듯 훨훨 날았고 D씨는 벌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나라 안팎으로 맨날 “내가 옳네”, “네가 틀리네” 하며 옥신각신하는 모습에 혀만 내두르다 이런 소소한 선행 소식을 들으니 훈훈함이 밀려온다.

코로나네 뭐네 하며 삭막하고 어지러운 상황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따뜻함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모두가 이 훈훈한 소식에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아일보] 이인아 스마트미디어부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