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비자 편의' 볼모로 한 5G
[기자수첩] '소비자 편의' 볼모로 한 5G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0.08.23 1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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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업계에 불합리했던 부분을 수정 조치했다. 5세대(G) 이동통신용으로 출시된 자급제 기기에 한해 4세대 LTE(롱텀에볼루션) 요금제로도 가입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다소 개선됐다. 이번 조치는 소비자단체·사업자·전문가 등이 참여한 통신서비스 제도개선자문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결정됐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이용가능한 단말기가 존재하고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 등을 이유로 LTE에서도 3G 서비스로의 전환을 제한해 왔다. 국내 이통사 중 LTE 기기 구매자들에게도 3세대(G) 이동통신 요금제를 제공한 건 KT가 유일했지만, LTE 전환 초기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런 행태는 ‘통신’을 ‘서비스’로 놓고 보면 상식적이진 않다.

TV를 예로 들어보자. 8K UHD(초고화질) TV를 구매했다고 해서 요금이 더 비싼 UHD 채널을 신청해야하는 건 아니다. 자원낭비로 보일 순 있겠지만, 가격이 비싼 TV를 구매하고 화질 낮은 서비스를 신청해도 문제없다.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다. 업체들은 프로그램과 콘텐츠의 원활한 실행을 위해 최소 또는 권장사양을 제시하지만, 고사양 기기를 구매한 이들에게 요금이 더 높은 서비스를 강요하진 않는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거나 무를 썰어도 칼 주인의 마음이란 뜻이다.

이 같은 까닭에 이번 5G 기기의 LTE 요금제 가입 허용은 소비자 권리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환영받는다.

다만 아쉬운 건 5G 자급제 기기에 한해 LTE요금제 가입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5G 기기를 통신사에서 구매할 경우 첫 개통은 여전히 5G 요금제로만 가능하다. 5G 기기로 LTE 요금제에 가입하기 위해선 온라인쇼핑몰 또는 삼성디지털프라자 등에서 자급제 기기를 구매한 뒤 별도 개통해야 한다. 스마트 기기 사용이 능숙한 세대에겐 쉽지만 번거롭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겐 까다로운 일이다.

물론 이동통신사들이 5G 기기 구매과정에서 공시지원금을 받은 가입자들에게 5G 요금제로 개통을 강제하는 건 당연하다. 혜택을 제공한 만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최신 기기의 경우 이통사 공시지원금보다 통신요금을 25% 할인해주는 선택약정할인 혜택이 더 높은 편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선택약정할인으로 통신서비스에 가입하고 있다.

자급제 채널에 비해 5G 기기 구매와 서비스 가입절차가 좀 더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5G요금제 가입을 강요하는 셈이다. 이통사들이 ‘편의성’은 기본으로 두고, 5G 전용 콘텐츠와 통신품질로 소비자들을 유인했으면 한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