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신미대사의 복숭아
[기고 칼럼] 신미대사의 복숭아
  • 신아일보
  • 승인 2020.08.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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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현 작가
 

영화 '나랏말싸미'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그린 영화다. 문자라고는 오로지 어려운 한문밖에 없던 조선 초기, 세종이 느낀 문제의식과 모든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를 만들기 위한 세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세종의 조력자로 5개 언어에 통달한 신미대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세종이 새 문자를 만들기 위해 발탁한 인물이다. 영화 막바지에 그의 대사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복숭아 하나에 씨앗이 한 개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씨앗 속에 복숭아가 몇 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글 역시 반포 당시엔 세종이 심은 복숭아씨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한참 뒤 조선왕조가 몰락하고도, 일제가 말살정책을 펼친 후에도 살아남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이 글이 600년 후에도 한국문화를 꽃피우는 중심이 될 줄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후손들이 이 한글을 또한 어떻게 활용할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인생에서 내린 수많은 결정이 미래에 어떤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너무나 쉽게 복숭아씨들을 으깨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새로운 기업이 하나 창업하는 것은 복숭아씨 하나를 심는 것과 같다. 처음엔 미약하지만, 미래에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기업이라면 더욱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올해 4월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체계 개편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자영업자의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수수료 개편을 강행하자, 곧바로 정부가 조치에 나섰다. 공정위에서 '갑질' 관련 조사에 착수하고, 중개수수료 없는 공공배달앱을 개발해 보급에 나선 것이다. 결국 배달의 민족은 수수료 개편을 철회했다.

작년엔 렌터카 서비스 '타다'가 논란이 됐다. 타다는 창업 당시부터 유사 택시영업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택시업계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사실상 '타다 금지법'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타다가 서비스했던 공유형 운송업은 이미 해외에서 우버, 그랩 등의 기업이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산업이다. 그러나 타다 금지법 통과로 이들 서비스는 한국에서 전부 불법화됐다.

배달의 민족과 타다는 모두 한국에서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위치에 선 기업이다. 새로운 산업은 항상 예상치 못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문제점을 보완해 새로운 산업이 정착될 수 있도록 돕는 것보다는 오직 금지하고 폐쇄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제재조치가 대부분 법을 새로 만들거나 아예 법 외의 수단을 통한 압박이라는 점이다. 이런 제재는 창업 당시에 예측할 수도 없다. 특히 공공배달앱과 같이 기업을 제재하기 위해 정부가 비슷한 성격의 서비스를 개시하는 경우는 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두 기업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누적될수록 신규 창업자들을 더욱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재능 있는 창업자와 안목 있는 투자자가 만나 수많은 노력과 자본을 투입한 결정체가 좋은 기업이다.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은 창업 전에 기존의 사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성공사례가 많아져야 더 많은 창업자가 시장에 뛰어들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기업을 제재하는 것을 즐기는 국가라면, 그런 나라에 어떤 창업자와 투자자가 기업을 세우고자 하겠는가?

성공한 기업은 신규 창업자들이 기업을 창업하도록 유인한다. 이들이 만들어갈 일자리가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즉 하나의 성공한 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결코 그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무심코 으깬 복숭아씨 하나 때문에 사라진 복숭아가 몇 개인지 모르듯이 말이다. 규제를 만들기 전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하길 바라는 점이다.

/정두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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