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사후약방문
[e-런저런] 사후약방문
  • 신아일보
  • 승인 2020.08.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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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사상 최악의 ‘물난리’가 발생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 6월24일 이후 8월9일까지 47일째 지속된 장마로 전국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38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됐다. 이는 ‘우면산 산사태’로 기억되는 2011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인명피해 규모다.

2020년을 기억하게 될 또 하나의 역사적인 기록은 장마 기간이다. 중부지역의 경우 역대 장마가 가장 길었던 해는 2013년의 49일이고, 장마가 가장 늦게 끝난 해는 1987년 8월10일이다. 장마 기간과 종료 시기 모두 기록 경신을 앞두고 있다.

유례없이 길었던 장마 탓에 비가 많이 내렸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이번 ‘물난리’도 여느 사건·사고와 마찬가지로 천재(天災)이기에 앞서 인재(人災)에 기인한 면이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풍수해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린 것은 지난 3일 오후였다. 이미 20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하고, 이재민도 800명 넘게 나온 시점이다.

올해 침수된 지역이 대부분 상습 침수구역이라는 점도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부산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중앙과 지방, 민과 관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부산’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2명이 숨진’ 2014년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죽은 뒤에 약의 처방을 한다’는 뜻으로, 때가 지난 뒤에 어리석게 애를 쓰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자연재해를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후약방문’을 매년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성원 스마트미디어부 차장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