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기자수첩]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석대성 기자
  • 승인 2020.07.2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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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약(破約)과 교만, 거짓말이 대한민국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 악화에도 경제 대국 반열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실상을 들여다보면 국가채무가 729조원이다.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나라빚이 1400만원인 셈이다. 4인 가족이면 5600만원이다.

구체척으로 올해 1분기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97.9%를 기록했다. 가계 빚이 전체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올해 예상하는 국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12조원, 3차 추가경정예산 적용으로 나라빚은 840조2000억원 이상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에 집계된 전국민 5178만579명이 1600만원씩 부담해야 하는 수준까지 오르는 것이다.

고령화·저출산으로 미래는 더욱 어두운 실정이다. 유엔인구기금이 작성한 올해 세계인구현황 보고서를 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1.1명에 불과하다. 세계 198개 국가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세계 평균 2.4명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1.9명인 북한보다 낮다. 국민연금은 고령화로 바닥을 보이고 있고, 나라의 기둥인 청년은 실업의 늪에서 좌절하고 있다. 실업자 수와 실업률은 21세기 들어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부동산 양극화 심화는 말할 것도 없이 기정사실화됐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3년 사이 강남 아파트 값은 11억3900만원에서 17억2600만원으로 52%나 뛰었다. 비강남 아파트 값은 5억2600만원에서 8억3000만원으로 53% 올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상승률이 14.2%라는 반박 자료를 냈지만, 경실련은 "국토부가 근거는 내놓지 않고 현실과 다른 주장만 되풀이한다"고 비판했다. 지금 내 집이 없다면 앞으론 더 힘들다.

정부 정책과 여당에 대한 국민 불신은 하루가 지날수록 확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거대 집권당으로 몸집을 불렸지만, 4·15 총선 100일도 지나지 않아 실책과 자책골을 연발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투기 과열로 공분한 민심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으로 폭발했다. 민주당은 '권력형 성폭력 대응 3대 원칙'으로 △피해자 중심 보호주의 △불관용 △근본적 해결을 내걸었지만, 박 전 시장에 대한 명성 보호에만 치중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조국·윤미향·박원순 사태만 봐도 집권 여당은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의와 인권의 상징을 자칭했지만, 최근 불거진 비위 의혹만 봐도 약자 중심주의는 둔갑에 불과했단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좌파는 속이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말이 있듯 도덕성의 기준까지 '진보'시키겠단 것인지 의심을 지울 수가 없을 정도다.

'웰빙정당'이란 비판을 들어도 만년 여당일 줄 알았던 정통보수 공당은 이미 전국 단위 선거 4연패로 국민에게 심판을 받고 있다. 지지율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신뢰 회복은 경제성장률 올리는 힘겨움과 비례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대한민국에 쌓인 부작용과 실태를 보면 '그동안 뭐 했나' 분노부터 하게 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발칙한 속담이 있다. 정치권의 주먹구구식 정책이 국민에게 피로감과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큰소리치며 당차게 내걸었던 공약은 알맹이 없었던 허언으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원칙 있는 정당이 있는지, 소신 있는 위정자는 있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명분과 원칙, 현실과 실리 사이에서 정략적 이권을 위해 고심한다. 거대 집권당만 해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벌써부터 당헌을 어길 구상을 하고 있고, 제1야당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막말이나 대책 없는 비난을 쏟는 등 여전히 구태 정치 기질을 못 버렸단 분위기를 자아낸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꼽았다. 이는 고사하고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엔 △약속 △겸손 △정직부터가 절실해 보인다.

bigsta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