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배 아픔'에서 '위협'으로 변한 집값 상승
[기자수첩] '배 아픔'에서 '위협'으로 변한 집값 상승
  • 전명석 기자
  • 승인 2020.07.1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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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에는 '삼익비치타운'이라는 아파트가 있다. 지난달 이 아파트 전용면적 148.2㎡가 실거래가 약 20억원을 기록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2년 전에 10억9000만원, 1년 전까지만 해도 12억2500만원이던 것이 단기간 많이도 올랐다.

1970년대 후반 분양 당시 가격이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나 한양아파트와 비슷했다고 하니 원래부터 싼 아파트는 아니었나보다.

삼익비치타운은 1970년대 간척사업으로 확보한 부지 위에 지어졌다. 그래서 지도를 보면 이 아파트 주변 해안선이 'ㄷ'자로 튀어나왔다. 단지 앞으로 수영만이 펼쳐져 있고, 광안대교가 그 위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남천동은 부산의 전통 부촌으로 꼽힌다. '바다 영구 조망권'이나 '황금 입지' 등 분양 관련 용어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옛 남천동에는 부산의 부유층과 서울에서 부산으로 발령받은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부산 토박이에게 삼익비치타운이 과거 어떤 아파트였냐고 물어보면 "오션뷰라는 장점보다 습기와 바닷바람으로 단점이 더 컸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거다. '진짜 부자'들은 거기서 안 살았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이 개발되고 집값이 올라 운 좋게 부자가 된 사람이 많다고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어감에서는 부러움과 배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누군가 농사짓던 땅 위로 도로가 놓이고, 도시가 건설돼 하루아침에 알부자가 됐다는 전설같은 일화들은 전국민을 잠재적 투기수요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일까.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부동산 투자는 뭔가 특별하고, 만물의 이치가 담긴 심오한 것마냥 느껴지기도 한다.

몇 년 전 일었던 비트코인 광풍은 투기판이 돼버린 부동산 시장을 압축한 듯한 모습이었다. 특정 코인을 개발한 개발진들끼리 회의만 해도 사람들은 '호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GTX니, 역세권 개발이니 하는 것들이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호재로 인식돼왔다. 호재라고 불리는 신호가 뜨면 돈을 쏟아붓고 빠져나가는 타이밍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부동산 뒤에 붙는 '불패'라는 수식어는 사람들을 투기에 더 목매게 한다.

문제는 주택시장에서 나타나는 패닉바잉 현상이 부동산 열풍에 합류하지 못한 이들의 정상적인 삶까지 위협한다는 것이다. 과거 세대가 집값 상승으로 배만 아프고 말았다면, 현 세대에게는 집값이 위기와 불안의 대상이 돼버렸다.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청년들은 출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국은 2018년 0명대 출산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현상이지만 부동산 투자가 미덕인 사회에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 셈이다.

구성원을 위협하고 국가 존속을 어렵게 만드는 행위를 투자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돈을 불린 이야기 또한 더 이상 미담이 될 수 없다. 과거처럼 배가 아픈 얘기도 아니다. 현 시점에선 투기 무용담일 뿐이다.

[신아일보] 전명석 기자

jms@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