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런저런] 1988년 어느 일요일의 외침 "유전무죄 무전유죄"
[e-런저런] 1988년 어느 일요일의 외침 "유전무죄 무전유죄"
  • 신아일보
  • 승인 2020.06.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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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일요일 밤 방영된 SBS스페셜은 과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강헌 사건'을 다뤘다. 특히 이날 방송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던 사건 당일의 내용에 더해 그 이전과 이후의 이야기까지 입체적으로 다뤄 공감을 이끌어냈다.

지강헌 사건은 88서울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88년 10월 16일 서울 북가좌동에서 벌어진 인질극을 말한다. 인질극은 지강헌 등 4명의 탈주범에 의해 자행됐고, 이 중 3명이 자살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당시 지강헌이 목 놓아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여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지강헌 사건의 단편일 듯싶다. 하지만 SBS스페셜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와 일어난 후의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이번 방송에서 첫 번째 주목할 점은 지강헌 등이 왜 인질극을 벌였는지다. 지강헌은 7차례에 걸쳐 현금, 승용차 등 약 556만원을 절도한 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은 재판부에서 인정한 금액만 76억원을 횡령했음에도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3년 뒤 석방됐다. SBS스페셜에서는 지강헌이 탈주 후 인질극을 벌인 이유를 전두환이 살고 있던 연희궁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두 번째는 지강헌 등이 연희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가정집에 들어가 이른바 '인질숙박'을 반복했는데도 인질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SBS스페셜이 담아낸 당시 인질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오히려 인질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속내를 드러내고, 기도를 하면서 오열하는 등 인질범들의 인간적인 면이 부각됐다. 아울러 인질극 당시 살아남아 경찰에 검거됐던 1명의 인질범을 위해 인질들이 탄원서를 써 형량을 가볍게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지강헌을 비롯한 4명은 범죄자였고, 탈주범이었으며, 인질범이었다. 그들의 죄는 너무나 명백하다. 다만 돈과 권력 앞에서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차별과 부조리, 그리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를 바로잡고자 했던 그들의 처절한 외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