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타이어 지주사의 오만과 편견
[기자수첩] 한국타이어 지주사의 오만과 편견
  • 이성은 기자
  • 승인 2020.05.1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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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손톱깎이 제조업체 ‘쓰리세븐(777)’은 지난 1995년 세계 최대 항공기제조업체 ‘보잉’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보잉이 자사 ‘보잉777’ 기종의 출항에 맞춰 등록한 기내용 손톱깎이 상표를 쓰리세븐이 베꼈다는 이유였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당시 두 회사의 연 매출 규모는 1500배나 차이 났다. 직원 수는 보잉이 10만명이었지만, 쓰리세븐은 200명 수준에 불과했다.

소송은 4년 가까이 진행됐다. 결과는 쓰리세븐의 승리였다. 쓰리세븐이 손톱깎이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현지 세관에 제출한 서류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셈이다.”

자동차 전장부품 중소업체 한국테크놀로지의 말이다. 한국테크놀로지는 최근 한국타이어의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벌인 상호사용 금지 등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했다. 쓰리세븐과 보잉의 상표권 소송전이 떠오르는 국내 기업 간 법적 분쟁이다.

앞서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5월 지주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의 사명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하 한국타이어 지주사)으로 바꿨다. ‘타이어’를 뺀 사명 변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타이어 지주사가 자동차 전장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려는 의지로 해석했다.

이에 지난 2012년부터 현재의 사명을 사용해 온 한국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1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한국타이어 지주사는 오만했고, 자사의 주장이 옳다는 편견에 갇혔다.

이번 판결은 한국타이어 지주사가 사명 변경 이전부터 한국테크놀로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테크놀로지는 사명 변경 이전부터 당시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 사명 혼동 피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지주사는 변경으로 밀어붙였다. 한국테크놀로지의 가처분 신청 때에도 패소 대응 방안을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타이어 지주사는 당초 “업종 자체가 달라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모두 지주 사업과 자동차 부품류 제조·판매업을 목적으로 한다”며 “일반인이 서로 관련 있다고 생각할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대가는 크다. 한국타이어 지주사는 상호가 표시된 각종 물품 등에서 현재 사명을 빼야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당장 이 상황에 대비한 예상 시나리오가 없는 점이다.

한국타이어 지주사는 법원 가처분 판결 이후 한국테크놀로지와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테크놀로지는 한국타이어 지주사의 사명을 자사 주주들이 혼동하는 등 피해 사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책임은 한국타이어 지주사에 있다.

se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