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키다리아저씨'만 있어선 안 된다
[기자수첩] '키다리아저씨'만 있어선 안 된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20.05.0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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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생)’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에서는 수술비를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환자들을 남몰래 도와주는 ‘키다리아저씨’의 훈훈한 사연들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보니 보는 이의 입장에서 감동의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농어업계에서도 최근 들어 이러한 ‘선의(善意)’의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과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판로가 막혀 전전긍긍하고 있던 농어가들에게 판로를 열어주면서 키다리아저씨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외식사업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통해 상품성이 떨어져 재고가 쌓인 해남 왕고구마 300톤(t)을 매입해 판로를 찾아줬다. B급 상품인 왕고구마는 가정용보다는 주로 가공용으로 소진된다. 하지만 지난해 생산량이 평소보다 늘어 판로 확보에 어려움이 컸는데, 이번 일로 다행스럽게 재고의 일정 부분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도 왕고구마 상품과 요리 사진을 게시하는 등 홍보에도 공을 들였는데, 이런 선의에 소비자들이 응답하면서 해남 왕고구마는 5일 만에 완판 됐다. 

정 부회장은 이전에도 백 대표와 가격폭락으로 출하를 못한 ‘강릉 못난이 감자’ 30t을 사들여 이틀 만에 모두 판매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최 지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재고가 쌓여 시름이 큰 감자 농가들에게 생산비라도 보전해주기 위해, 지난 3월 자신의 SNS에서 특판행사를 집중적으로 알렸다. 온라인 직판으로만 진행했음에도, 저렴한 가격과 농가 돕기라는 취지에 많은 이들이 호응하면서 2주 만에 감자 20만6000박스가 완판됐다. 

이어 최 지사는 같은 방식으로 동해 오징어는 30분 만에 2000상자를, 수출 길이 막힌 양구 아스파라거스는 1분 만에 2000상자를 매진시키며 농어가 돕기에 앞장섰다.

이처럼 키다리아저씨 덕분에 농어가들의 숨통은 다소 틔었지만, 이런 ‘혜택’은 일부 지역과 품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수의 생산자들은 여전히 판로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코로나19로 심각성은 더해졌지만, 사실 농수축산물의 판로 문제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이는 가격안정과 수급조절 등 유통 전반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농업계가 꾸준히 지적하는 생산량 등 농수축산물 통계의 정확도 제고와 산지의 조직화·규모화는 물론, 재고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못난이 상품 소비 활성화 등에 더욱 속도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