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성웅 이순신 장군 탄신 475주년을 기념하며
[기고 칼럼] 성웅 이순신 장군 탄신 475주년을 기념하며
  • 신아일보
  • 승인 2020.04.26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은 인종 1년인 1545년 4월28일(음력 3월8일) 한성부(漢城府) 건천동(乾川洞,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에서 이정(李貞)과 초계 변씨(草溪卞氏)와의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이순신 장군은 어린 시절 영특하고 활달했으며 정의롭고 용감하면서도 인자했다. 다른 아이들과 모여 놀 때면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동리에서 전쟁놀이를 했다.

8세 때에 서울을 떠나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아산(牙山)으로 이주해 살아 아산에는 이순신 장군 관련 역사적 유적이 많이 산재해 있다.

선조 5년인 1572년 8월 훈련원(訓鍊院) 별과(別科)에 응시했으나 말에서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탈락했다. 그래서 31세 때인 선조 9년인 1576년 2월에야 식년시(式年試) 무과(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해 관직에 나섰다.

유성룡의 천거로 조산보(造山堡, 지금 함경북도 경흥) 만호로 특진해 변방을 지켰다. 경흥부사 이경록(李慶祿)과 함께 여진족을 격퇴하고 백성 60여명을 구출했다. 

동구비보권관, 건원보권관, 사복시주부, 정읍현감, 진도군수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자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으로 부임해 군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했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4월13일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면서 옥포해전, 적진포해전, 사천해전, 당포해전, 1·2차 당항포해전, 한산도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장문포해전, 명랑해전, 노량해전에 참여해 23전 23승으로 불후의 정공을 세웠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도주하던 적선을 추격하다가 유탄에 맞아 선조 31년인 1598년 11월19일 전사했다. 그의 시신은 충남 아산군 금성산에 안장됐다가 광해 6년인 1614년에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1로 이장됐다.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들은 조정은 우의정을 추증했다. 선조 37년인 1637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녹훈됐으며, 좌의정이 증직되었고, 덕풍부원군(德豊府院君)으로 봉해졌다.

인조 21년인 1643년에는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효종 10년인 1659년에는 남해의 전적지에 그의 비석이 세워졌다.

숙종 33년인 1707년에는 충청도 아산(牙山)에 세워진 그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호가 내려졌으며, 정조 17년인 1793년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충무의 충렬사, 여수의 충민사, 아산의 현충사 등에 배향돼 해마다 제향을 올리고 있다.

1795년에는 문집인 <이충무공전서>가 왕명으로 간행됐다. 현대에 와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의 중심인 세종로에 동상이 세워지고 현충사가 대대적으로 정비돼 성역화됐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수많은 역경과 난관을 치열한 고뇌와 노력으로 돌파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23전 23승의 놀랄만한 전과를 올려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등과 함께 불세출의 구국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창의력을 발휘해 학익진과 거북선을 새로 개발했고, 전란 속에서도 틈틈이 일기를 써 명저인 『난중일기(亂中日記)』을 남겼으며, 억울하게 모함을 당해 옥고를 치르고서도 백의종군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 한국 국민들의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s)로 우뚝 솟았다.  

국보 제76호인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이순신 장군의 신념·열정·철학 즉 효충도 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데,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과 비길만한 훌륭한 인물로 세계 유일의 군신(軍神)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리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으로부터 본받아야 할 것으로는 충효와 애민 정신,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전술, 타고난 문장력과 창의력, 불굴의 투지와 인내력 등을 들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인 4월28일을 전후해 아산시와 서울 중구와 여수시에서는 성웅 이순신 탄신 기념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성웅 이순신 탄신 기념 축제가 개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안타깝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외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aster@shinailbo.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