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칼럼]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영향
[기고 칼럼]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영향
  • 신아일보
  • 승인 2020.04.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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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2020년 4월19일은 4·19혁명 제60주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역사적인 날이다.

4·19혁명은 1960년 4월19일부터 4월26일까지 약 1주일 간 대한한국 전역에서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3·15부정선거에 항거해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이 인권을 탄압하고 3·15 부정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자 대구, 광주, 대전, 마산, 충주 등 대도시의 청년 학생들이 항거해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곤봉과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목숨을 잃고 중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자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돼 결국 4·19혁명이 터지고 말았다.

4·19혁명은 전국의 초·중·고·대학생, 일반 시민, 교수 등 10여만명이 참여해 대대적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여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제2공화국을 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말았다. 실제로 시위 진압에 동원된 무장 경찰들과 깡패들이 최루탄을 쏘거나 곤봉을 휘두르거나 총을 발사해 4·19혁명 과정에서 186명이 사망했고, 1500여명이 부상을 당해 유가족들의 마음을 지금도 아프게 하고 있다. 특히 4월18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구속된 동료 학우들의 석방과 학원 자유를 요구하며 평화시위를 벌인 후 귀가하던 고려대 학생들이 청계천 4가를 지날 때에 경찰과 모의한 반공청년단이라는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도로 여기저기에 쓰러지자 애국 시민들이 분노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요구가 한꺼번에 폭발해 시위가 난무하는 바람에 사회질서가 혼란하고, 경찰서 등 관공서 건물이 파손돼 많은 피해를 입었다.

청년학생들이 주도한 4·19혁명은 한국의 역사에서 학생과 일반 대중이 봉기해 독재정권을 쓰러뜨린 최초의 사건으로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똑바로 심어주었다. 그리고 4·19혁명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7년 촛불 혁명 등 민주화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8·15 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19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었다고 언급한다. 한편 어느 역사학자는 4·19혁명을 절대왕정의 구체제를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에 비유했고, 어느 경제학자는 4·19혁명을 국가 독점 자본주의를 해체한 민주적 혁명으로 평가했다.

4·19혁명의 성공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을 가자 야당인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반공보수가 당내의 정책이었던 민주당은 시민들의 요구사항에 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장면 내각 때 경찰 내 발포 책임자에게 무죄 선고를 하자 학생들과 시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은 장면 총리가 주도하는 신파와 윤보선 대통령이 주도하는 구파의 대립으로 여전히 정치사회적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 틈을 타서 1961년 5월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들이 일으킨 쿠데타는 5·16 혁명이라 치켜세우고 4·19혁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4·19의거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그래도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유, 민주, 정의 등 4·19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문구가 기록돼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4·19혁명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4·19로 8길 17에 국립 4·19 민주묘지·기념탑·기념관을 조성하고, 인근의 경전철 역명을 4·19민주묘지역으로 정했다.

4·19운동이 크게 벌어진 곳 중 한 곳인 광주광역시에는 4·19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2012년 4월14일 금남 56번 버스를 419번 버스로 바꾸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는 2013년부터 해마다 4·19혁명 국민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각종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19일 오전 국가보훈처 주최로 서울 강북구 소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 "4·19혁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 최초의 민주화운동이고, 전세계 학생운동의 시작이기도 하다"며 "정부는 그 의미를 특별히 기리고 4·19혁명의 정신을 인류에게 남기기 위해 2022년을 목표로 4·19혁명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4·19혁명 민주영령들의 희생과 정신을 세계인과 함께 계승하고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반기로 연기된 ‘4·19혁명 국민문화제’가 60주년의 의미에 걸맞은 국민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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